[사설]대통령 건강 이유로 ‘성완종 정국’ 수습 미룰 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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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어제 오전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표를 오후 늦게 수리했다. 이 총리는 비공개 이임식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 총리가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불법 자금 3000만 원을 받았는지는 앞으로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지겠지만 그 이전에 잦은 말 바꾸기로 신뢰 상실을 자초했다. 그의 사퇴는 국정의 정상화를 위해 불가피했으나 취임한 지 불과 69일 만의 국무총리 사퇴에 국민들은 현 정부에 큰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귀국한 뒤 신속한 정국 수습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총리 사퇴 소식과 함께 어제 하루 대통령 관련 소식을 접하면서 또 한 번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 오전 “박 대통령이 귀국 직후 건강검진을 받았다”고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대통령 건강 문제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민 대변인은 “만성피로 때문에 생긴 위경련에 의한 복통이 주 증상”이라며 ‘인두염’ ‘미열’ 등을 언급하면서 “전체적인 건강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다”고 밝혔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총리 사표 수리에 대해서도 “오늘은 수리를 안 한다”는 말이 나돌다 뒤늦게 이뤄졌다. 이미 결정된 총리 사표 수리가 그렇게 미적거릴 일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국가 안보사항과 다름없는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여러 증상까지 나열하며 공개한 것은 정치적 이유가 있다는 오해를 부를 만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폐질환을 앓았던 사실을 얼마 전 자서전에 공개하며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걱정하는 말을 하거나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대통령의 건강을 이유로 당분간 정국 현안과 거리를 두고 4·29 재·보궐선거의 결과를 본 뒤 정국 대응 방향을 정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늘 열리는 국무회의는 정부조직법상 서열 1, 2위인 대통령과 총리의 공백으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주재하기로 했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경제활성화, 한미일 외교 문제 등 국정 현안 처리도 최소 2, 3일 동안 차질이 불가피하다.

성완종 리스트에 포함된 인사들은 모두 박 대통령 측근들이다. 이 총리를 발탁한 박 대통령에게 인사 실패의 책임이 큰 상황에서 총리 사퇴 등에 대해 길게 침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의 동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대(對)국민 사과와 함께 어떤 각오로 정국 수습에 나설 것인지 분명하게 밝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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