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근형]그들에게 스포츠는 생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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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수영이… 아니었다면… 매일… 집에만… 있었겠죠… 어쩌면… 지금…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을…지도….”

어눌하고 탁한 음성이었다. 언어장애가 있는 듯 말을 더듬거렸다. 대화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이 가진 무게만큼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3년 전 당시 19세로 국내 최연소 시각장애인 철인에 도전하던 박성수 씨가 그랬다.

박 씨는 머리에 종양을 갖고 태어났다. 심장 기능이 약해 신생아 때 수술을 받기도 했다. 무릎과 골반 뒤틀림이 심해 거동도 불편했다. 급기야 중학교 3학년 때 시력을 잃었다. 시각장애 1급, 뇌병변장애 5급. 박 씨의 삶은 어두웠다.

유일한 희망은 수영이었다. 처음엔 재활 운동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곧 장애인수영 청소년대표에 뽑힐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 결국 트라이애슬론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완주해냈다. 박 씨의 어머니는 “의사들은 아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할 거라고 했는데…”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박 씨의 도전을 지켜보면서 장애인에게 스포츠는 그저 취미생활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걸 절감하게 됐다.

제2, 제3의 성수 씨를 만나볼 수 있는 축제의 장이 열린다. 세계 80개국 2500명의 선수들이 다음 달 10일부터 열전을 펼칠 2015 서울 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2013 평창 스페셜올림픽, 지난해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에 이어 장애인들의 꿈을 펼칠 무대가 다시 열린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하지만 대회 준비 상황을 들여다보니 걱정이 앞섰다. 전체 예산(181억7500만 원) 중 국비(54억5300만 원), 서울시 지원금(28억 원), 선수 등록비(약 20억 원 예상)를 제외한 비용을 기부금과 스폰서 비용으로 충당해야 하는데 아직 절반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개 국제대회가 열리면 정부와 해당 지자체가 인력을 조직위에 파견해 대회를 직접 챙기지만 이번엔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의 인력 파견조차 없었다. 장애인계, 체육계에서도 이런 대회가 열리는 사실조차 잘 모를 정도로 홍보도 부족한 실정이다. “유력 정치인인 나경원 의원이 전면에 섰던 스페셜올림픽과 너무 비교된다. 이러니 기업들이 후원에 나서겠냐”라는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 담당자의 말이 그저 푸념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더 서글픈 건 장애인계 내부에서조차 정파에 따라 이번 대회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번 대회는 서울시의 반대에도 최동익 의원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 시절 주도적으로 유치에 뛰어든 사업이다. 하지만 최 의원이 유치 성공 직전 연합회장 연임에 실패하고 대회에서 사실상 손을 떼면서 대회 추진 동력이 떨어졌다. 최 의원이 대회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점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운동이라는 일상적 행위는 누군가에게는 살기 위한 마지막 끈일 수 있다. 정치적 문제는 잠시 덮고 이번 대회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을 제2의 성수 씨들을 생각할 때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
#수영#박성수서울 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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