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함께]K리그 7개 프로팀 후원하는 한국축구의 든든한 ‘버팀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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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용품 업체 험멜코리아(㈜대원이노스)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세계적인 용품 브랜드 나이키와 아디다스에 비할 수 없다. 그런데 국내 축구계에서는 최고의 ‘스폰서 킹’으로 꼽히고 있다.

험멜코리아는 3월 초 K리그 클래식의 명문 포항 스틸러스, 인천 유나이티드와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 2001년부터 프로구단을 후원하기 시작해 올해만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 23개 팀 중 7개 팀을 후원하고 있다. 경남 FC와 강원 FC, 수원 FC, 그리고 2013년 직접 창단한 충주 험멜에 용품을 대고 있다. 2007년부터 K리그 클래식 신흥 명문으로 떠오른 전북 현대의 파트너가 돼 8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와 같은 인기 브랜드는 K리그보다는 월드컵을 대비해 주로 국가대표 후원이나 스타플레이어 후원에 집중한다. 나이키는 K리그 팀들과는 스폰서 계약을 하지 않았다. 아디다스는 K리그 클래식 수원 삼성과 울산 현대, 부산 아이파크 3팀을 후원하고 있다. 》

‘험멜을 입고 K리그를 평정하다.’ 2007년부터 험멜코리아 유니폼을 입은 전북 현대는 2009년과 2011년, 2014년 등 K리그를 3회 정복했다. 사진은 지난해 K리그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전북 선수단이 우승컵을 들고 환호하는 모습이다. 험멜코리아 제공
‘험멜을 입고 K리그를 평정하다.’ 2007년부터 험멜코리아 유니폼을 입은 전북 현대는 2009년과 2011년, 2014년 등 K리그를 3회 정복했다. 사진은 지난해 K리그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전북 선수단이 우승컵을 들
고 환호하는 모습이다. 험멜코리아 제공
험멜코리아가 이렇게 많은 국내 축구팀을 후원하는 배경엔 변석화 회장(53)의 남다른 축구사랑이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축구광 변 회장은 프로구단들이 어렵다고 하면 흔쾌히 용품 후원을 하고 있다. 변 회장은 “다 함께 발전해야 해야 한다. 구단들도 잘돼야 험멜코리아도 잘 된다. 어렵지만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게 내 철학이다”라고 강조했다.

험멜코리아와 변 회장의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면 1974년 만들어진 월계축구회에 눈길이 닿는다. 당시 열두 살이던 변 회장이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서 친구들과 모여 만든 축구클럽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 20여 명이 매일 아침 동네 공터나 학교 운동장에 모여 공을 찼다. 또래 축구팀이 없어 대학생 형들이나 조기 축구팀 아저씨들과도 경기를 했다. 어렸지만 당당했다. 또래 아이들이 성인이 된 1980년대에도 이들의 축구는 계속됐다. 1986년 양지축구클럽 주최 직장축구대회 우승, 1987년 새마을화천조기청년회 주최 축구대회 우승 등 조기축구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월계축구회를 거쳐간 스타플레이도 많았다. ‘왼발의 달인’ 하석주 아주대 감독, ‘박지성의 스승’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 안종관 전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이 월계축구회에서 축구를 했다. 학창 시절 선배들을 따라 주말에 월계축구회에서 경기를 했던 것이다. 이들은 지금도 가끔 월계축구회에 나와 공을 찬다. 월계축구회는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1994년 중소기업을 다니던 변 회장은 회사를 그만두고 축구 사업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축구에만 전념하기 위해서다. 축구 유니폼을 전문으로 만드는 의류회사 ‘월계스포츠’를 만들었고 이게 나중에 ㈜대원이노스가 됐다. 변 회장은 1998년 덴마크에 본사를 둔 험멜의 제품을 한국으로 들여오는 독점계약을 체결했다. 1919년 독일에서 시작해 1923년 덴마크에 터를 잡은 험멜은 종합스포츠브랜드다. 독일 말로 ‘벌’을 뜻하는 험멜(Hummel)의 정신과 같이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기업이다. 벌이 무리를 지어 협동하며 살듯 험멜코리아도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상생하는 자세로 운영하고 있다.

막 사업을 시작했을 때 외환 위기가 닥쳤다. 변 회장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이때부터 더 빛을 발했다. 국민은행 한일은행 기업은행 같은 실업축구팀이 줄줄이 해체됐다. 당연히 갈 곳 없는 선수들이 생겼다. 변 회장은 이들을 그냥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을 직원으로 고용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축구하라는 뜻이다. 이들이 경기감각을 잃지 않도록 1999년엔 실업팀 험멜코리아를 만들었다. 월계축구회 소속 선수들도 포함됐다. 오전 5시 30분부터 새벽운동을 하고 회사로 출근해 일하는 시스템이었다. 변 회장은 200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대학축구연맹 회장을 하고 있다.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 선수를 영입해 팀을 꾸리던 실업 험멜코리아는 2013년 K리그 챌린지로 진출했다. K리그 클래식 밑의 프로 2부 리그에 해당하는 K리그 챌린지에 팀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선뜻 프로화를 진행한 것이다.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구단 운영비가 3∼4배는 훌쩍 뛰기 때문이다. 변 회장은 당시 “프로축구연맹에서 2부 리그 창단한다고 팀을 모으는데 반응이 미지근해서 2부 리그가 출범도 못 하고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동네 축구 출신이지만, 40년 동안 축구를 따라다니며 살았다. 우리처럼 작은 팀이 먼저 나서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험멜코리아 같은 작은 회사도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서 프로축구팀을 만든다면 다른 기업에서도 더 많이 프로리그에 참여해 줄 것 같아서 프로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실업팀 험멜 출신 5명을 포함해 총 33명으로 팀을 구성했다. 월계축구회 출신들은 이제 선수가 아닌 지도자가 됐다. 구단주인 변 회장, 한규정 단장, 전 이재철 감독 등이 월계축구회 출신이다. 현재는 김종필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다. 한 단장은 험멜 실업팀 시절부터 단장을 맡아왔다. 이 감독은 프로팀인 수원 블루윙즈에서 뛰다가 2000년 변 회장이 만든 험멜 실업팀으로 옮겼다. 월계축구회가 배출한 축구 선수이기도 하다.

월계축구회는 1974년 결성돼 40년 넘게 한국축구 저변을 넓히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위). 험멜코리아는 1998년 덴마크 험멜 제품을 국내 들여오는 독점계약을 체결했다(가운데). 1998년 외환위기로 실업자 선수들이 양산되자 험멜코리아는 월계축구회 회원들을 주축으로 1999년 험멜 실업축구팀을 창단했다. 험멜코리아 제공
월계축구회는 1974년 결성돼 40년 넘게 한국축구 저변을 넓히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위). 험멜코리아는 1998년 덴마크 험멜 제품을 국내 들여오는 독점계약을 체결했다(가운데). 1998년 외환위기로 실업자 선수들이 양산되자 험멜코리아는 월계축구회 회원들을 주축으로 1999년 험멜 실업축구팀을 창단했다. 험멜코리아 제공
험멜코리아는 본격적으로 한국스포츠 발전을 위해 뛰어들었다. 제품 홍보도 중요했지만 인기 없는 대회나 팀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1999년 대학축구대회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했다. 이게 인연이 돼 대학축구연맹 회장을 10년 넘게 하고 있다. 험멜코리아는 2006년부터 대한장애인축구협회와 동부프로미농구단도 후원하고 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실제 모델이었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대표팀을 지원했고 남녀 하키 국가대표팀도 후원하고 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북한 축구대표팀에 유니폼을 후원하기도 했다.

변 회장이 팀 후원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뭘까. 다른 용품업체처럼 아예 대표팀이나 스타플레이어를 후원하면 더 빛이 날 수도 있지 않을까. 변 회장은 “구단 용품 후원은 프로축구 울산과 2001년 시즌부터 3년간 계약을 한 것이 첫 인연이었다. 당시 울산이 유니폼 스폰서를 확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먼저 연락이 왔고 우리 회사도 덴마크 브랜드인 험멜에 대한 국내 권리를 확보한 초창기여서 브랜드 홍보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험멜 브랜드를 K리그 선수들이 입고 뛰는 것은 서로에게 윈윈(win-win)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변 회장은 “험멜 브랜드를 입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뛰면서 팀이 좋은 성적을 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단순히 우리 브랜드의 홍보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용품이 좋은 결과를 내는 데 일조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 그 이상 기분 좋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험멜코리아는 특히 K리그의 신흥 명문으로 떠오른 전북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유명 브랜드들이 지방 팀들을 외면할 때 전북과 손을 잡았다. 전북은 험멜 브랜드의 유니폼을 입고 2009년과 2011, 2014년 3차례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철근 전북 단장과 변석화 회장의 깊은 우정도 축구계에서는 유명하다.

험멜코리아는 유니폼만 전담하는 디자이너를 따로 두고 있다. 이 디자이너가 그 팀의 지역적 특성, 팬들이 좋아하고 가치 있게 느끼는 부분들을 찾기 위해 1년 내내 팬들 및 구단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프로구단은 그 지역을 상징할 수 있다. 변 회장은 “지역성을 살리는 게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4년 전부터 프로팀 전담 디자이너를 두고 있는데 이렇게 신경을 쓰니 일반인들은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을지 몰라도 이전과 비교하면 달라졌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우리가 맡고 있는 프로팀에는 무언가 특화된 서비스를 해보자, 우리가 대기업이 아니어서 물량공세는 못한다 해도 질적으로 차별화된 지원을 해보자, 이런 생각이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변 회장은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프로축구팀을 후원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조금 부담되는 면도 있다. 우리 브랜드의 홍보효과만 생각한다면 솔직히 이렇게까지 많이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도움을 받는 부분도 있고, 우리가 도움을 주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주변에서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해준다. 하지만 내가 축구를 정말 좋아하고 우리 회사가 프로축구 2부 팀까지 만들었는데 축구에 관한 것은 우리 힘이 닿는 데까지는 하자는 생각이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고 나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석화 회장
변석화 회장
▼험멜코리아 스포츠 후원 일지▼

2001∼2003년: 프로축구 울산

2002∼현재 : 대학축구대회

2003∼2004년: 핸드볼 국가대표

2004∼2005년: 프로축구 전남

2005∼2006년: 프로축구 부산

2005∼2007년: 프로축구 광주 상무

2005∼현재: N리그 공식 사용구

2006∼2007년: 북한 축구대표팀

2006∼2009년: 프로축구 경남

2006∼현재: 프로농구 동부

2006∼현재: 한국뇌성마비장애인축구협회

2007∼현재: 프로축구 전북

2007∼2008년: 프로배구 삼성화재

2008년: 부산세계사회체육대회

2009∼현재: 서울시축구협회,

강원도축구협회 공식구

2010∼현재: 남녀 하키 국가대표팀

2011∼2014년: 프로축구 대구

2012∼현재: 프로축구 경남

2013∼현재: 프로축구 충주

2014∼현재: 프로축구 강원, 수원FC

2015년: 프로축구 포항, 인천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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