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정보]지상파를 살려야 한류가 산다는 궤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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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中자본-광고 규제가 아닌… 불공정 행위 일삼는 지상파 甲질

서정보·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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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지상파TV 3사는 메인뉴스에서 한류 관련 기획보도를 닷새간 14건이나 쏟아냈다. 보도의 내용은 판에 박은 듯 유사했다. 요약하자면 ‘지상파가 한류 수출액의 80% 이상을 맡으며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중국 자본이 국내 제작진을 휩쓸어가는 등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광고 규제 완화 등 지상파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리포트에는 “현 상황에서 중국 자본과 맞설 수 있는 대항마는 지상파 방송사들 정도입니다”(15일 SBS ‘8뉴스’)라는 과시적 표현도 있었다.

최근 중국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블랙홀처럼 한국의 콘텐츠 제작인력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진단은 맞다. 하지만 지상파만이 그에 맞설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국내 방송 콘텐츠 시장 규모가 7조 원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벌써 20조 원 규모로 성장한 중국과는 덩치 싸움을 할 수 없다. 그보다는 참신하고 다양한 콘텐츠 개발과 이를 위한 창의적 제작환경 조성으로 승부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지상파가 새로운 콘텐츠나 포맷을 선보인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중장년층을 위한 시사·정보 토크 프로그램을 개척한 종합편성채널이나 ‘응답하라 1994’ ‘미생’ 등 화제의 드라마를 방영한 tvN 등 케이블 채널에서 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오히려 지상파는 ‘슈퍼스타K’나 ‘꽃보다 할배’ 같은 케이블의 프로그램을 베끼고 있는 상황이다.

지상파가 한류 수출액의 80% 이상을 담당한다는 자랑도 엄밀히 말하면 지상파의 ‘공’이라고만 볼 순 없다. 2013년 방송산업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상파의 프로그램 수출액 1억1700만 달러 가운데 78.4%가 드라마 수출액인데, 지상파 주요 드라마 대부분은 외주 제작사가 기획, 제작한다. 한류 발전은 지상파 방송뿐만 아니라 외주사와 스태프 등이 함께 노력해야 가능하다는 의미다.

최근 중국은 한국 외주 제작사에 직접 드라마를 의뢰하면서 “홍자매가 쓰는 로맨틱코미디” “연출은 신우철 PD가 해야 한다” 등을 조건으로 내건다. 어느 방송사가 편성해 방영됐느냐보다 어떤 콘텐츠인지를 따지는 것이다.

정작 한류의 발목을 잡는 건 창작 의욕을 꺾는 지상파의 ‘갑질’일지도 모른다. 한 드라마 제작자의 말처럼 “제작비는 50%가량만 주면서 저작권은 지상파가 거의 다 가져가는 불공정한 현실”이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지상파#한류#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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