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활짝 핀 인동초 ‘거미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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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K리그 우승 숨은 주역 권순태
경기당 0.53 실점… 최소기록 눈앞… 벤치 설움 딛고 최은성 공백 메워

“우승을 확정지은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어요. 그동안 어려웠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2014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우승을 차지한 전북의 골키퍼 권순태(30·사진)는 8일 전북이 제주를 3-0으로 이기고 우승을 확정지은 밤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잠을 잤다고 했다.

권순태는 전북 우승의 주역이다. 17일 현재 32경기에 나서 17점만 허용했다. 이 중 18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골키퍼의 활약을 평가할 때 경기당 실점이 1.0 이하면 특급으로 본다. 권순태는 올 시즌 경기당 0.53점만 허용하며 10경기 이상 뛴 선수 중 경기당 최소실점 1위에 오르는 ‘짠물’ 방어를 펼쳤다.

권순태는 1991년 울산에서 활약한 최인영 전 전북 현대 코치가 세운 역대 경기당 최소 실점 기록인 0.57점(30경기 17실점)을 깰 가능성이 높다. 권순태가 전북의 남은 2경기에서 2골 이하로 허용하면 새 기록을 쓴다.

2006년 전북 입단 후 최고의 활약이다. 권순태는 2012년 상무에서 정규리그 16경기를 뛰고 제대했다. 하지만 그해 전북에 복귀해 고작 2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지난해에도 8경기 출전에 그쳤다. 베테랑 최은성 현 전북 골키퍼 코치(43)가 2012년 대전에서 이적해오면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권순태에게는 지난 2년이 좌절이 아닌 ‘오늘’을 있게 한 시간이었다.

“축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어요. 은성이 형에게서 기술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배우고 느낀 게 많았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권순태는 7월 20일 최 코치의 은퇴 경기였던 상주전에서 후반 상대 공격수의 슈팅을 몸을 던져 손끝으로 가까스로 쳐냈다. 그때를 축구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이라고 주저 없이 꼽았다. 권순태는 “형의 은퇴식을 망칠 수 없다는 의지로 손을 뻗었는데 하늘이 도왔다”고 했다.

국가대표 수문장인 수원의 정성룡(29·33경기 32실점·경기당 0.97)과 울산의 김승규(24·27경기 26실점·경기당 0.96)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권순태에게는 뒤처진다.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30대에 접어든 권순태는 아직 국가대표로 출전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 태극 마크는 아쉬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냥 꿈이고 이상이죠. 꿈과 이상을 가지려고 노력은 하되 팀 성적이 우선입니다.”

프로 데뷔 후 줄곧 전북에서 뛰고 있는 권순태는 “선수들 스스로 자극을 받고 성장하도록 이끄는 최강희 감독님의 지도력을 보면서 다른 어떤 기회를 잡는 것보다 ‘전북 주전 골키퍼’에 대한 애착이 확고해졌다”고 말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권순태#골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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