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모산 연쇄방화범은 50대 주부, “불보면 기분 좋아져…” 우울증이 火根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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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범 신세가 된 주부 장모 씨(53)는 한때 ‘잘나가는 청춘’이었다. 서울의 한 명문 여대를 졸업한 장 씨는 재력 있는 집안에 시집갔다. 겉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9일 오후 8시 30분. 그는 양손에 신문지와 라이터를 들고 서울 강남구 대모산 중턱까지 올라갔다.

장 씨는 먼저 낙엽을 모았다. 곧장 들고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이내 불길은 옆 나무들로 번졌다. 과묵한 나머지 대화 한마디 없는 남편에게 받던 30년 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처음 소나무 송진에 조금씩 불을 붙이던 장 씨는 갈수록 더 큰 불꽃을 보고 싶은 마음에 낙엽을 모아 불을 질렀다. 그때마다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방화는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6차례나 이어졌다. 다행히 매번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조기 진화해 큰 피해는 없었다.

장 씨의 방화 행각은 그가 현장에 버리고 간 담배꽁초 때문에 덜미가 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장 씨는 스스로 “조울증 환자”라고 밝혔다. 조증이 나타나면 한없이 기분이 좋다가 반대로 우울증이 오면 기분이 가라앉았고 그때마다 라이터를 들고 나섰다. 오랜 기간 변변한 직업 없이 지내던 남편 탓에 스트레스가 쌓인 결과였다. 결국 8년 전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3년 전부터는 담배에 손을 댔다. 빨간 담뱃불만 보면 장 씨는 기분이 좋아졌다. 더 큰 기쁨을 맛보고 싶어서 낸 아이디어가 불을 지르는 것이었다.

우울증 환자의 방화 사례는 드물지 않다. 2일 서울 서초구의 한 고시텔에서 불을 질러 검거된 강모 씨(39·여)는 심한 산후우울증을 10년 전부터 앓고 있었다. 2012년 정부서울청사에 불을 지른 뒤 투신자살한 김모 씨(61) 역시 툭하면 “죽겠다”는 유서를 남기던 중증 우울증 환자였다. 의학계에서는 방화범 가운데 50% 정도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빠른 우울증 치료가 방화로 인한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김대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장 씨는 심한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고 방화로 이어진 사례”라며 “지인과 가족들이 나서 우울증 치료와 약물을 통한 충동조절 치료도 함께 받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이철호 기자
#대모산#방화범#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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