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진호에 지역구 의원 있었다면 보훈처 예산 잘랐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7일 03시 00분


국회 정무위원회 예산소위가 국가보훈처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장진호 전투 기념비 예산 3억 원과 유엔 평화기념관 전시물 예산 20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정우택 정무위원장을 찾아가 항의하자 여야 의원들이 박 처장을 비난했고 결국 박 처장이 사과했다.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무턱대고 예산을 자른 여야 국회의원이다.

장진호 전투는 6·25전쟁 중이던 1950년 11월 25일부터 12월 11일 사이 함경남도 장진호 부근에서 미군 제1해병사단과 중공군 간에 벌어졌던 전투를 말한다. 미군들이 병력면에서 10배나 많은 12만 명의 중공군을 상대로 결사 항전을 하면서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했다. 이 덕분에 유엔군이 우리 쪽 군인 10만 명, 민간인 10만 명을 남쪽으로 탈출시키는 흥남 철수를 할 수 있었다. 미국은 장진호 전투를 ‘미군 전사(戰史)에서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념하고 있다.

여야는 이미 미국의 다른 곳에 장진호 전투를 기념하는 비가 3개 세워져 있다는 이유로 워싱턴 소재 한국전쟁기념관에 세울 기념비 예산을 모두 삭감했다. 그러나 기존의 기념비들은 미군이 스스로 성금을 내서 세운 것이다. 북한 장진호 쪽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이 있었다면 이런 홀대를 했겠느냐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유엔군 장병들의 유해가 안장된 부산의 유엔 기념공원도 6·25전쟁 참전국 관계자와 참전 용사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최근에야 겨우 인근에 유엔 평화기념관을 세웠지만 내부 전시물은 변변치 않다. 미국과 유엔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킨 터에 부끄러운 일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가 어제부터 본격 가동했다. 예산안조정소위는 각 상임위가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구 예산 위주로 증액한 15조 원가량의 예산안부터 철저히 살펴 불요불급한 것을 모두 걸러내야 한다. 여야 간사가 약속한 대로 의원들의 ‘쪽지예산’ ‘카톡예산’도 이번엔 원천봉쇄해야 한다. 그 대신 장진호 전투 기념비처럼 국가적으로 필요한 사업 예산은 반드시 반영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비서실이 휴대전화기 등 신규 물품 구입과 관련해 감사원과 야당 의원으로부터 예산 낭비 지적을 받은 것은 창피한 일이다. 수백조 원의 예산 가운데 몇십억 원의 물품 구입 예산을 갖고 뭘 그러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청와대이기에 문제가 된다. 국가기관들이 국민의 혈세인 예산을 단 1원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게 하려면 청와대부터 꼭 필요한 일에만 예산을 쓰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장진호#보훈처#지역구 의원#유엔 평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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