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동주]법원이 음주운전 면죄부 줘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조동주·사회부
조동주·사회부
“최대한 늦게 불어.”

최근 음주운전 중 경찰 단속에 걸렸다가 혈중 알코올농도 0.048%가 나와 극적으로 단속 기준치(0.05%)를 피했다는 지인이 기자에게 자랑스레 알려준 ‘비법’이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2시간 후에 운전대를 잡았다가 단속에 걸렸는데 30분 동안 버티다 호흡측정을 해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이다. 지인은 “술 마시고 1시간만 지나면 혈중 알코올농도가 점점 떨어지니까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며 ‘영웅담’을 풀어놨다.

본보 ‘시동 꺼! 반칙운전’ 시리즈 담당인 기자는 “어느 때인데 음주운전을 하느냐. 요즘은 법원에서도 음주운전은 가차 없이 엄하게 처벌한다”고 정색하며 질책했지만 최근 기자의 ‘충고’를 무색하게 하는 판결이 나왔다. 음주 단속에 적발된 뒤 40분 동안 버틴 끝에 호흡측정을 했다가 면허정지 수치인 혈중 알코올농도 0.056%가 나온 50대 남성이 “적발 직후 측정했다면 기준치를 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에서 부산지법이 “술을 마신 지 1시간 정도 지났을 뿐이라 혈중 알코올농도가 상승기여서 운전 당시 0.05%를 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 판결이 알려지자 현장에서 음주단속을 하는 교통경찰들은 “참으로 허탈한 판결”이라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경찰은 단속 중 도망가려는 음주운전자와 사투를 벌이는데 정작 법원은 엉뚱한 법리로 ‘지적 만족’을 채운다고 성토했다. 누리꾼들도 “가수 김상혁이 시대를 앞서 간 선지자였다”며 조롱했다. 김 씨는 2005년 음주운전을 하고 3중 추돌사고를 냈다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변명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법원은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했을 것이다. 판결대로 이 50대 남성이 처음 음주단속에 적발됐을 때 혈중 알코올농도가 법정 기준치인 0.05%를 넘었다고 단정할 증거는 없다. 하지만 단속에 걸리지 않았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혈중 알코올농도가 높아져 분명 0.05%를 초과한 채 운전했을 것이고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줄 사고를 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법리가 무고한 다수 운전자의 안전보다 우선한다면 기자는 “최대한 버티다 혈중 알코올농도를 낮춰 처벌을 모면했다”는 지인에게 할 말이 없어진다. 오늘부터 음주단속에 걸리면 버티다 불고, 법정에서 변명하면 되는 건가.

조동주기자 djc@donga.com
#음주운전#면죄부#법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