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간 미술 진화과정 따라 경쾌한 탐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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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원숭이/데즈먼드 모리스 지음/정미나 옮김/320쪽·3만3000원·시그마북스

저자의 대표작 ‘털 없는 원숭이’는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지 24년 후인 1991년에야 국내 번역됐다. ‘성행위’를 ‘짝짓기’라 일컬으며 인간 행동양태 일체를 동물의 한 종 다루듯 분석한 문제작. 20여 개 언어로 옮겨져 수천만 부가 팔렸고 일부 지역에서는 판매 금지되거나 몰수돼 불태워졌다.

올해 86세인 이 동물행동학자는 초현실주의 화가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면서 세계 여러 나라를 찾아가 인간의 미술 행위를 확인하고 프랜시스 베이컨, 알렉산더 콜더, 헨리 무어 등 예술가들을 만나 의견을 나눴다. 두툼한 경험과 세월의 결과물인 이 책은 47년 전의 첫 원숭이만큼 충격적이진 않지만 묵직하고 풍성하다. 드문드문 의심스럽게 내비치던 성 도착적 문장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은 뇌 구석구석을 짜릿하게 흥분시키는 명쾌한 중용의 통찰이다.

서문은 “인류의 삶에서 다른 종과 구별되는 측면을 일부러 무시해왔다”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인간을 독보적인 동물로 만드는 가장 흥미로운 양상이 예술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첫 장에 등장시킨 주인공은, 원숭이다. 그림 그리기에 본능적인 열의를 보인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1950년대 실험 결과에 이어 인간의 아이가 미술에 눈떠가는 과정에 대한 서술을 발칙하게 병치했다.

“(숱한 예술사 서적이) 프랑스 남부 라스코의 동굴 그림을 ‘미술의 탄생’으로 여겨왔지만 그 높은 수준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어린아이가 낙서를 끼적이기 시작할 때. 그 모든 순간이 바로 미술의 탄생이다.”

이집트 람세스 조각상, 홍콩의 패션 광고판, 중국 설치미술가 아이웨이웨이의 영국 테이트모던 설치작품을 한 페이지에 나란히 놓았는데도 어색함이 없다. 미술사 지식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통로로서 미술을 탐구하려는 시선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덕이다. 인간은 어째서 예술을 하는 걸까. 무엇이 ‘위대한’ 예술일까. 이 책은, 정답 없는 그 질문에 인류가 내놓은 빼어난 답안 중 하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예술적 원숭이#털 없는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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