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성진]‘법조인에게 부처 맡기기’ 조심해야 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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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법관 검사 잦은 발탁… 사법권 독립,검찰 중립에 악영향
법조인, 소극-방어적 업무 익숙… 상상력이나 비전은 부족
어려운 민생경제 살리고 사회 통합 이뤄내야 할 朴정부… 인사에도 철학-비전이 필요하다

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 전 법무부 장관
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 전 법무부 장관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에 들어와서 현직 법관이나 검사 출신의 법조인들이 정무직으로 임명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국무총리의 경우 후보직을 일찍 사퇴한 김용준, 안대희 전 대법관과 아직도 어려운 총리직을 수행 중인 정홍원 전 고등검사장이 있고, 현재의 감사원장과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모두 법원장급으로 재직 중에 임명된 분들이다. 전례가 여러 번 있었지만 대통령비서실의 전·현직 민정수석비서관과 국가정보원 제2차장도 검사장 경력자이다.

물론 이분들은 국가가 공인한 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부나 검찰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데다 평소 명석한 판단과 절제 있는 몸가짐으로 주위의 신망을 받아 왔으므로 그 개인적 자질이나 능력의 측면에서는 전혀 나무랄 데가 없는 훌륭한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직이나 최근에 사임한 법조인을 정부 부처의 장으로 임명하는 근간의 경향이나 추세에는 다음과 같이 간과하기 어려운 중요한 문제점도 내포되어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첫째, 위와 같은 인사 행태가 반복되면 자칫 우리의 헌법 이념이나 정신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우리 헌법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라 사법권의 독립(헌법 제101조 이하)을 명시하고 있고, 헌법상 영장신청자로만 명시된 검사에 관하여도 보통 수사지휘권을 가진 준사법기관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법관이나 검사가 행정이나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라는 헌법 이념상의 요청이라고 볼 수가 있다.

따라서 만약 법관이나 검사 중에서 행정부 고위직을 발탁한다든가, 행정부의 성향에 맞는 재판이나 검찰 처분을 한 전직 법관, 검사를 정부가 우대하는 인사 관행이 생겨나고 그것이 혹 반복되기라도 한다면 이미 사법권의 독립이나 검찰의 중립성은 더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후진적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는 점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이웃 일본만 해도 법관이나 검사가 퇴임 후 선거직에 나서는 드문 경우 이외에, 행정부의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예나 그런 발상 자체가 없다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둘째, 보다 실질적인 문제는 법조인들이 대체로 문제에 대한 분석력과 합리성은 뛰어나지만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이나 추진력은 취약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 언론인이 법조인의 그런 행태를 ‘상상력과 비전의 부족’이라고 표현한 바도 있지만 이것은 법조인 모두가 원래 그런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고 재판이나 수사 등 업무 자체가 합리적 분석과 판단을 위주로 하고 있어, 정책 협의나 조정 혹은 국면을 타개하고 이끌어 나가는 경험과 훈련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뜻이라고 해석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또 과거 유신헌법이나 긴급조치가 유효하던 시절 일부 검사나 법관들이 보였던 모습과 관련하여 법조인은 대체로 역사의식이 빈약하다는 비판도 없지 않아 온 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라의 현 상황이 민생경제를 진작시키고 국가를 불신하는 시민사회에 신뢰 회복의 답을 줄 필요가 있는데, 법조인들은 대체로 소극적·방어적 업무에 익숙하고 문제를 미시적·분석적으로 접근하는 편이므로 지금의 사회적 상황에서는 지나치게 국가주의적인 사고에 경도(傾倒)된 편의적 인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한계론적 비판도 가능하게 된다.

물론 법조인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선거를 거쳐 새로운 공직에 취임하거나, 퇴임 후 변호사나 교수 또는 다른 봉사직에 종사하던 분을 행정부의 정무직에 임명하는 사례까지 반대할 이유는 없다. 또 정무직이라고 하더라도 합의제 독립위원회로 운영되는 기구의 장으로 임명하는 경우에는 위에 말한 문제점이 훨씬 덜 부각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법률가가 나서서 정부를 지키기보다 사회적 적폐를 일소하고 나라의 통합과 발전을 일궈 나가야 할 시점이다. 물론 공권력에 대한 신뢰나 권위 회복과는 별개로, 힘이 곧 정의라는 잘못된 인식이 보편화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 인사에도 앞을 내다보는 철학과 비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 전 법무부 장관
#박근혜 대통령#인사#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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