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 혼난 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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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 골잡이 이름값 못하고 전반엔 볼 터치 15번 가장 적어
G조 첫판 독일전 참패 지켜봐… “경기 아닌 패션만 신경” 비아냥도

체면 구겼네 포르투갈 축구대표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17일 브라질 사우바도르의 폰치노바 경기장에서 열린 독일과의 조별리그에서 축 처진 어깨에 힘없는 표정으로 서 있다. 세계 최고 공격수로 꼽히는 호날두는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체면을 구겼다. 사우바도르=GettyImages 멀티비츠
체면 구겼네 포르투갈 축구대표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17일 브라질 사우바도르의 폰치노바 경기장에서 열린 독일과의 조별리그에서 축 처진 어깨에 힘없는 표정으로 서 있다. 세계 최고 공격수로 꼽히는 호날두는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체면을 구겼다. 사우바도르=GettyImages 멀티비츠
“오늘 같은 악몽을 잊기 위해서라도 술을 좀 먹고 자야겠어요.”

포르투갈의 전설적인 축구선수와 이름이 같은 루이스 피구 씨는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이 경기 하나를 보기 위해 3박 4일간 휴가를 내고 브라질을 찾았지만 악몽 같은 체험만 하고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함께 세계 최고 공격수를 다투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도 피구 씨와 같은 심정일지 모른다.

시작은 좋았다. 17일(한국 시간) 브라질 사우바도르의 폰치노바 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 월드컵 포르투갈과 독일의 조별리그 G조 첫 경기. 호날두는 양 팀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경기 전 몸을 풀기 위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은 환호성을 지르며 호날두의 이름을 연호했다.

경기장에는 독일 팬이 포르투갈 팬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경기장 대부분을 채운 브라질 팬은 호날두의 편이었다. 포르투갈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브라질 팬은 포르투갈의 홈팬인 것처럼 호날두와 포르투갈을 응원했다. 오죽했으면 독일의 요아힘 뢰브 감독은 경기 전날 “포르투갈을 응원하는 브라질 홈팬의 텃세가 걱정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호날두가 공을 잡을 때면 경기장이 들썩일 정도의 환호성이 들렸다. 호날두가 프리킥을 할 때는 관중석 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그러나 자신감이 넘치던 호날두의 표정은 경기 시작 20분이 지나자 초조함으로 바뀌었다. 자신에게 오던 패스가 상대 수비수에게 막히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동료를 바라보기도 했다. 독일의 집중 수비에 플레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후반 끝날 무렵에는 그라운드에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 호날두는 팀의 굴욕적인 0-4 패배를 막지 못했고 경기 전 “팬들에게 최고의 쇼를 보여주겠다”는 말과 달리 골도 넣지 못했다.

경기 내내 그의 활약은 미미했다. 호날두가 이날 전반 공을 건드린 횟수는 불과 15회로 양 팀 통틀어 가장 적다. 포르투갈은 호날두가 뛴 왼쪽 측면 공격에서 4%의 점유율만을 기록했다. 이날 경기에서 호날두가 뛰었다는 사실은 관중의 환호와 함께 세 차례의 프리킥을 찰 때만 알 수 있었다. 지난 두 번의 월드컵에서 두 골에 그친 호날두는 이번 월드컵에서 득점왕이 되기는커녕 체면만 구기게 생겼다.

경기 뒤 호날두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굳은 표정을 지은 채 모습을 드러내자 수많은 취재진이 인터뷰를 요청했다. 호날두는 “다른 동료들이 하고 있으니 나는 안 하겠다”며 인터뷰를 거절하고 빠른 걸음으로 믹스트존을 빠져나갔다. 어두운 표정과는 달리 호날두의 의상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모자를 쓴 호날두는 허리에 재킷을 두르고 무릎까지 오는 검정스타킹을 신었다. 호날두가 멘 화려한 가방에는 자신의 이름과 등번호를 상징하는 ‘CR7’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아이돌 가수 같은 차림새였다. 포르투갈 기자는 “호날두가 패션에 너무 신경을 쓰느라 경기에 집중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우바도르=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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