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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이정렬의 병원 이야기]외과 의사와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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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이정렬의 병원 이야기]외과 의사와 주방장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입력 2014-04-01 03:00수정 2014-08-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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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누구나 단골 식당 한두 곳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주방장의 솜씨(요리 기술)와 변함없는 맛(표준화), 편안함(고객 만족)과 입소문(평판)이 그 이유일 것이다.

필자는 단골식당 주방장을 생각하면서 심장 외과의사인 필자의 직업과 비교해 본 적이 있다. 환자(고객)가 과연 한결같이 내 솜씨(수술 기술)와 맛(결과)에 만족해 주변에 소문을 내주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말이다. 내게도 오래된 친구 같은 주방장이 운영하는 단골집이 있다.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얼핏 내 일과도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그와 나는 칼을 잘 써야 밥벌이가 된다. 또 물(상처 소독용, 링거액 등)을 많이 쓴다. 위생과 항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책 보고 배우는 지식보다는 스승을 만나 도제식으로 배운다. 그가 바닥 청소부터 시작했듯 나 역시 상처 꿰매는 일부터 배우다가 어느 순간 홀로 서기를 했다.

의사나 주방장이나 모두 20년은 족히 노력해야 겨우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명문 요리학원을 나오면 좋지만 표준화된 요리 교본(수술 교본)과 자기만의 레시피(수술 기술)가 있어야 단골이 생긴다. 기술이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까워야 한다. 혼자만 잘해서도 안 된다. 팀이 필요하다. 최고의 요리를 위해서는 고가의 신선한 식재료(의사 입장에서 보면 건강보험 재정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가의 심장박동기 같은 것) 사용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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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나 주방장이나 조리료(행위료, 수술료)가 음식값(건강보험수가)에 포함되어 따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특유의 흰색 주방장 모자와 제복(수술모자, 수술복)도 똑같다. 무엇보다 단골(환자)이 없으면 망한다.

주방장에게는 있고 외과의사에게는 없는 점도 있어 부러운 면도 있다. 주방장 요리에 대해서는 다들 감탄사를 연발하지만 외과의사의 수술은 아무리 복잡한 것을 잘해 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요리는 망쳐도 되지만 수술은 망치면 환자가 죽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

또 있다. 주방장은 메뉴 선택과 요리 시간에 여유가 있지만 외과의사는 촌음을 다투는 긴장의 연속이다. 주방장은 행복한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들지만 외과의사는 불행한 사람을 기껏해야(?) 정상으로 만든다.

후배 병아리 외과의들을 보면 언제 이 사람들이 ‘닭’이 되어 제 구실을 할까 걱정도 되지만 내가 겪었던 기나긴 수련 과정을 생각해 보면 후배들이 나보다는 더 짧은 시간에 기술을 습득하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미래 지향형 전문가가 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시피 외과 환경은 필자가 수련을 시작하던 30년 전과는 달리 수련 과정과 수련 후 미래 생활의 질이 그리 밝지 않다고 인식되어 3D(Dirty, Dangerous, Difficult) 업종으로 치부되고 있다. 훌륭한 인적자원들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이 선뜻 지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여건하에서도 사명감과 통찰력이 강하고 동기 부여가 충분하고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강한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미래 리더가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멋진 후배들이 있어 흐뭇할 때가 많다. 이들이야말로 한국 의료의 희망이다.

이제 이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소수 정예로 키워내야 한다. 이들을 맥 빠지게 하는 어떤 환경도 국민적으로 볼 때 손해다. 공부해야 하는 시기에 어떤 이유에서라도 파업 전선 같은 데로 내몰아서도 안 된다. 최근 실험동물과 컴퓨터 시뮬레이터를 이용한 기술 교육이 급속도로 활성화되고 있는데 바쁜 와중에도 동물을 이용한 복잡외과기술 배우기에 정진하는 수련의들을 보면 너무나 기특하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겠는가?

우선 ①본인의 부모를 직접 수술할 수 있을 정도의 최고 의료 수준과 환자 중심 마인드로 무장된 자신감과 준비가 있어야 한다. ②머릿속이 늘 질병에 대한 지식으로 꽉 차 있어야 한다. ③판단과 결정이 신속 정확해야 한다. ④솜씨가 예술이어야 하고 수술이 안전해야 한다. ⑤본인이 한 업적을 학문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중에서도 매우 절실한 부분이 있으니 바로 의료기술 교육이다.

요즘엔 교과서, 잡지, 인터넷 등 지식 습득 수단이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직접 칼질과 바느질을 하는 수술 기술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의료 기술 변천사를 꿰뚫고 있어야 하며 그 의미까지 파악하고 최신 기술을 몸으로 습득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련 기간 동안 선배들 어깨너머로 배운 것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명의(名醫) 반열에 오른 선배 의사들도 후배 교육에 보다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

훌륭한 외과의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노력과 헌신이 우선 제일 중요하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배출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국민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중병에 걸린 환자를 낫게 해 줄 이들이 바로 그들 아니겠는가.

다행히 한국의 수술 기술은 아직까지 세계적 수준이다. 비록 흉부외과, 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등 외과계 지원자가 부족한 것이 고민이긴 하지만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스타들도 잘 자라고 있다. 이들은 ‘돈벌이의 화신’도 아니고 ‘파업 전문가’도 아니고 실제도 떼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우리의 ‘착한 사마리안’들이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외과의사#노력#주방장#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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