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채빚 떠안고 알바 전전할 때 소설이 절 구원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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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경 자전적 장편소설 ‘청춘 파산’ 펴내

파산 시대의 청춘을 대변하는 장편 ‘청춘 파산’을 쓴 소설가 김의경. 그는 “20대 이후 땡전 한 푼 누구한테 받아본 적 없이 스스로 벌어서 살았다. 그 시절 소설이 없었더라면 우울하게 살았을 거다”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파산 시대의 청춘을 대변하는 장편 ‘청춘 파산’을 쓴 소설가 김의경. 그는 “20대 이후 땡전 한 푼 누구한테 받아본 적 없이 스스로 벌어서 살았다. 그 시절 소설이 없었더라면 우울하게 살았을 거다”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여고생은 사채업자와 마주하고 말았다. 그것도 학교에서. 동대문시장에서 옷 가게를 크게 하던 어머니는 부도 위기에 처했다. 신용카드 돌려 막기로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딸의 이름으로 사채를 빌린 것이었다.

문신 한 ‘덩치’들이 그랬다. “넌 아무 걱정할 것 없어. 네 이름으로 빌리는 거지만 네 엄마가 갚는 거니까. 넌 그냥 이름만 빌려 주는 거야.”

사채업자들은 지구 끝까지 쫓아올 기세였다. 돈 갚으라는 전화가 하루에 50통 넘게 걸려왔다. 새벽에는 대문을 두드려댔다. 신용불량자 신분으로는 아르바이트 외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가난한 청춘의 혹독한 시간, 그를 구원한 것은 소설이었다.

김의경(36)의 장편소설 ‘청춘 파산’(민음사)은 작가의 자화상이다. 어머니의 사업 부도로 20대에 신용불량자, 30대에 개인파산자가 된 소설 속 주인공 백인주의 알바 인생은 작가의 경험이다. 13일 만난 그는 “소설을 완성하고 보니 분량이 너무 많아서 역할 대행, 과외 아르바이트 같은 에피소드 3개를 빼야 했다”면서 웃었다.

소설에서 신용카드는커녕 한 달에 30만 원 이상 써본 적도 없는 인주는 자고 일어나니 빚더미에 앉아 버렸다. 귀신같이 알고 직장으로 몰려드는 사채업자들 탓에 웬만한 일자리는 엄두도 못 내던 그는 ‘알바 천국’에 입성한다. 의자 위에 올라서서 좀도둑을 감시하는 인간 CCTV, 나이트클럽 위장 손님, 인형 탈 쓰고 가게 홍보, 고시원 총무….

“대학생 때 알바 하던 카페에서 고등학교 친구가 미팅을 하더라. 나는 어떤 남자가 나를 쳐다보면 불안하던 시기였다. 미행하는 사채업자일까 봐. 변장용 가발을 갖고 다녔다. 귀가하면 집에 ‘덩치’가 드러누운 날도 있었다. 내가 너무 내 나이답지 못하게 살고 있나 싶을 때, 소설만이 유일한 오락이고 도피처였다.”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소설을 더 알고 싶어서 성균관대 국문학과에 편입했다. 시간표는 수업시간을 제외하곤 모두 아르바이트로 채워졌다. 오후 8시쯤 일이 끝나도 사채업자가 기다릴지도 모르는 집으로 바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도서관으로 갔다. 처음에는 돈이 덜 들어서 그랬다.

“그전에는 책 읽는 애들을 보면 ‘왜 저렇게 재미없게 살아’라고 그랬다. 도서관에서 성석제 은희경 소설에 빠졌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들춰 보다가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넘어갔다.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의 살인 장면은 워낙 강렬해서 꿈도 꿨다. 현실과 구분되는 소설 속 세계가 좋았다. 등장인물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소설이 친구였고 활력이었다.”

빚 독촉이 악랄하게 이어질 때는 ‘죽으면 못 쫓아오겠지’라고 낙담하다가도 ‘그래도 소설 100권은 더 읽고 죽어야지. 아직 못 읽은 소설이 많아’라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다. 2009년에 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신춘문예와 공모전 14곳의 최종심에 올랐지만 당선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2012년 4월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한 절박한 상황에서 이 소설이 터져 나왔다.

“친한 친구도 나의 자세한 사정은 잘 몰랐다. 내 얘기를 모두 털어놓고 나니 홀가분하다. 잘 울지 않는 편인데 퇴고를 하면서 몇 번 울었다. 사귀던 남자친구가 떠나는 장면, 나이 든 엄마가 미술학원 모델 하는 장면…. ‘이제 다 지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우울하지 않다. 명랑하고 경쾌하다. 인주는 거대한 빚을 지고도 주눅 들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꿈을 찾아간다.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라고 생각했던 경험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거치면서 깨달았다. 세상에 빚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은 널려 있다. 그 빚의 덫에 걸려든 사람들에게 이 소설이 아주 작은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여고생#사채#청춘 파산#김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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