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짓고 다리 세우고… 생각보따리도 쑥쑥 커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소외 아동 대상 프로그램 ‘꿈꾸는 건축학교’ 수업 현장

17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시립 꿈나무마을에서 열린 꿈꾸는 건축학교 수업에 참여한 초등생들이 스티로폼과 수수깡, 끈 등을 재료로 모형다리를 만들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7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시립 꿈나무마을에서 열린 꿈꾸는 건축학교 수업에 참여한 초등생들이 스티로폼과 수수깡, 끈 등을 재료로 모형다리를 만들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사자다리를 만들어 보자. 다리 앞에는 사자 얼굴, 뒤에는 꼬리를 붙인 다리를.”

“방금 수업시간에 배운 현수교는 어때? 다리 밑에 돛단배도 만들고.”

17일 서울 응암동 서울시립 꿈나무마을. 부모가 없거나 함께 살 수 없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그룹홈으로 재단법인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보육 시설인 이곳에서는 초등학교 5, 6학년생 40명이 스티로폼과 수수깡을 재료로 다리 모형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만들고 싶은 다리 이미지를 그린 그림을 보여 주며 친구들을 설득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잘라 낸 스티로폼에 색을 칠하는 아이들까지, 꼬마 건축가들의 집중력은 어른들 저리 가라 할 정도다. 모형 제작을 돕는 자원봉사자 선생님과 주고받는 장난과 농담으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들이 받고 있는 수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정림건축문화재단, K12건축학교가 공동 운영하는 건축 교육 프로그램 ‘꿈꾸는 건축학교’다. 젊은 건축가들이 재능 기부 강사로 나서고 실습 자재 비용은 포스코A&C가 후원하는 프로그램. 주 1회, 한 번에 2시간 반씩, 총 10주에 걸쳐 공간과 건축, 도시 디자인 이론을 배우고 실제 모형을 제작하는 실습도 병행한다. 10주 차 수업 때에는 앞서 실습 시간에 만든 건물과 다리, 벤치 등의 모형을 모아 도시 모형도 만들 예정이다. 상반기에는 다문화 가정 자녀를 상대로 수업이 열렸고 꿈나무 마을에서는 현재 6주 차 수업을 마쳤다.

아이들 반응은 폭발적이다. 이날 수업에 참가한 최재성(가명) 군은 “생각했던 걸 직접 만들어 보니까 재미있다. 친구들과 함께 만드니까 더 좋다”고 했다. 강효봉 꿈나무마을 원장수녀는 “오늘은 병원에서 충수염 수술을 받은 친형 문병도 미루고 건축학교 수업을 듣겠다는 아이도 있었다”며 “지난주에 야외에 오두막을 만드는 실습 때는 바깥 날씨가 무척 추웠는데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아이들이 오두막을 들락거리며 신나 했다”고 말했다.

건축학교는 단순히 건축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방에서 친구 여럿과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개인 공간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는 이곳 아이들은 나중에 입양된 뒤 독립 공간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는데 건축학교가 이런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 강 원장은 “앞으로 독립해서 살 집을 구상해 보거나 모형을 만들며 일정한 성취감도 맛보고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어울리면서 예의범절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꿈나무 건축학교를 다른 소외 계층으로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20일부터 크라우드 펀드를 개설했다. 두 달 동안 500만 원을 모으는 게 1차 목표다. 문화예술위원회 강언덕 과장은 “이 금액이면 어린이 40명이 3개월간 건축학교를 들을 수 있다”며 “내년에는 탈북 청소년을 대상으로 건축학교를 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기부 문의는 02-760-4864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