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남자답지 못한 남자는 껍데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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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창당 계획도 없이 여전히 ‘간’만 보는 안철수
NLL논란에 1년을 몰아넣고도 “불찰” 한마디로 끝낸 문재인
우유부단 무책임한 그들보다 여성 대통령이 더 남자답다… 창조경제 꽃 피울까 걱정이지만

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참 남자답지 못한 남자도 다 있다. 차기 대통령을 겨냥하고 지난주 하루걸러 등장한 두 남자를 보며 나는 혼자 탄식했다.

하필 내 눈앞에 ‘남자다움에 관하여’라는 책이 있어서였는지 모른다.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인 하비 맨스필드는 “남자다움이란 위험 앞에서 자기 확신을 갖고 용맹하게 쟁점을 만들고,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라며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던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여성주의자들은 인정 못한대도 할 수 없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감 책임감 위험감수와 성취지향성 같은 남성적 특성을 지녀야 사회 적응에 더 긍정적이라고 아주대 김혜숙 교수는 ‘한국인은 누구인가’라는 책에 썼다. 사회 현실 특히 정치에선 남자다운 남자, 여자도 치마 입은 남자여야 리더로 적합하다는 의미다.

안철수 의원은 철은커녕 여전히 간만 보는 모습이었다. 28일 “공식적 세력화를 시작하려고 한다”면서도 언제 창당할 건지, 누구와 함께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우유부단 리더십’이라는 모순어법의 평가도 있지만 그의 대선캠프에서 일했던 이동주 전 매일경제 논설위원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유난히 큰 성격인 데다 밀어붙이는 의지가 강하지 못한’ 인물이라고 신동아에 썼다.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뤄야 하는 후보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도 연인끼리 앙탈 부리는 듯했다는 거다.

신중한 ‘타이밍 정치’가 잘못됐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햄릿은 왕이 되지 못한다. 우유부단하면 사인(私人)과의 관계에서도 피해를 주기 십상이다. 안랩 주식을 가진 개미들 사이에선 22일 오전 “28일 창당 선언” 했다가 주식시장이 마감한 뒤에야 “향후계획 발표”로 바꾸는 바람에 피를 봤다며 “작전 피워 개미 돈으로 정치하지 말라”는 곡소리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안철수가 나선 바로 다음 날 “2017년 대선에서 어떤 역할도 회피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대통령선거 재도전을 선언했다. 대선이야 몇 번 재도전하든 개인 자유다. 그러나 “대선 후 1년은 공개적 발언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되도록 피했다”고 앞뒤 다른 말을 하는 데는 듣는 이가 고통스럽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발언 논란에 “원본 공개하라” “국가기록원 찾아보자”는 공개 발언으로 일을 키운 사람이 바로 그다. 심지어 여야 대표가 NLL 논란 중단 선언까지 했는데도 문재인은 “NLL 포기 논란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7월 26일)고 불을 질러 검찰 수사로까지 확대시켰다.

“NLL에 관한 노 전 대통령의 입장이 북한과 같은 것으로 드러나면 제가 사과는 물론 정치를 그만두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다”(6월 30일)더니, 국민적 에너지를 1년 가까이 허비하게 만들고는 이제 와서 “대화록 미(未)이관은 참여정부의 불찰이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가볍게 넘기는 건 무책임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스스로 “싸가지 없는 진보는 안 되더라”고 했지만 지금 본인이 딱 그 행태다.

두 남자에 비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훨씬 남자답다. 대선 전 시인 김지하는 “아버지를 놓아버리고 어머니를 따라서 너그러운 여성 정치가의 길을 간다”며 지지했다. 실은 겉은 육영수, 속은 박정희가 맞을 성싶다. 국방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의 리더십은 시기상조라는 공격도 있었다. 하지만 4월 중순 이후 50% 이상으로 쑥쑥 올라간 지지율은 단호한 대북정책에서 나왔다.

야권이 종북 논란, 국정원 댓글 문제를 아무리 물고 늘어져도 정치적 효과를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갤럽 조사 결과 대선 투표자의 54%가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관련 경찰 발표를 신뢰하지 않았다고 답했으나, 대통령은 당선됐다. 민주당은 당장 국정원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국정과 민생의 발목을 잡을 일이 아니다. 수권 능력을 인정받아 차기 대선에서 이긴 뒤 국정원 개혁을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어쩌면 국정원을 그대로 두는 것이 이롭다는 허무개그도 나돈다. 다음 대선 때 민주당이든 안철수 신당이든 이길 만한 당에 알아서 붙을지 누가 아느냐는 거다.

남자든 여자든 리더가 남자답지 못하면 국민이 힘들다. 그러나 남자다움이 지나치면 권위주의 전체주의 민족주의 파시즘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강한 리더십은 21세기 창조경제와 어울리지 않는다. 내 형편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어떤 대통령도 폭군으로 보일 수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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