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진영 장관, 복지 난제로부터 비겁하게 도피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8일 03시 00분


사퇴설이 나돌던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어제 결국 사표를 제출했으나 정홍원 국무총리가 반려했다. 정 총리 측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복지 관련 예산 문제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태에서 사표를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법안까지는 마무리해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이지만 진 장관이 뜻을 굽히더라도 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기초연금 축소에 대해 그제 국무회의에 이어 어제 노인단체를 초청한 자리에서도 “안타깝고 송구하다”며 거듭 사과했다. 박 대통령은 공약 파기는 아니며 단지 재원 때문에 미뤄진 것으로 임기 내에 실현하겠다고 말하지만 기초연금을 소득하위 70%에게만 주기로 한 것은 공약 위반임에 틀림없다. 세수 부족으로 인한 복지공약 축소는 불가피하지만 누군가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진 장관이 지난해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으로 복지공약 설계에 참여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기초연금 축소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은 맞다. 기초연금 방안을 놓고 소득기준 차등지급을 주장한 진 장관과 국민연금과의 연계를 고집한 박 대통령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진 장관은 주무 장관으로서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중요한 시점에 불쑥 사표를 던진 것은 결코 옳은 처신이 아니다.

기초연금 축소는 복지공약 구조조정의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쏟아질 무상보육 예산 배분, 4대 중증질환 지원 확대 등 뜨겁고 무거운 현안을 앞두고 진 장관이 미리 몸을 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에서 “비겁하다”며 격앙된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박근혜의 남자’로 불렸던 진 장관은 사실 친박(親朴)-탈박(脫朴)-복박(復朴)의 복잡한 정치적 여정을 걸어왔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로 확정되자 진영 의원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에 앉혀 공약개발 책임을 맡겼고 인수위 부위원장으로도 기용했다. 진 장관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두텁다는 뜻인데 이번에 곤경에 빠진 대통령을 돕지 않고 사의를 밝힘으로써 ‘도박(逃朴)’이라는 말까지 듣게 됐다. 진 장관을 중용한 박 대통령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진영#사표#정홍원#복지 예산#기초연금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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