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전교조의 실수, 역사교과서 투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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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의 이상한 헌법 해석 “친일 독재세력 배격이 우선 남한 단독정부 수립은 잘못”
‘자유민주주의’ 입각한 교학사 교과서가 헌법 유린?
정의가 숨을 죽이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나라로 역사관을 되돌리고 싶은가

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전교조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 교학사 교과서가 옳은가 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반대 투쟁에 나선 것을 보고 중3 딸을 둔 엄마가 한 소리다. 교사 평가 반대, 학업성취도 평가 반대, 학교 성과급 반대 등 지금껏 전교조가 반대해 온 일은 모두 학부모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전술상 실수를 한 것 같다. 진정 교학사 교과서를 죽이고 싶었다면 그들은 죽은 듯 있어야 했다. 학부모들 뇌리에 전교조는 학생 편이 아닌 지 오래다. 학년 초만 되면 엄마들은 내 아이 담임교사가 전교조 소속이 아니기를 빈다. 그 민심의 폭발이 작년 말 ‘전교조 위원장 출신’을 내걸고 서울시교육감 재선거에 나선 이수호 좌파 단일후보의 패배였다.

그 뒤 잠잠했던 전교조가 열흘 전 ‘친일·독재 미화 뉴라이트 한국사 교과서 무효화 국민운동’에 이어 ‘교학사 검정승인 취소 교사선언’을 내놨다. 법외노조 통보를 받을 위기에 처하자 ‘친일·독재 교과서’ 딱지의 휘발성을 업고 실지(失地) 회복에 나선 모양이다.

나는 우리나라 헌법정신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인 줄 알았다. 친일세력과 독재세력 배격을 자유민주주의보다 상위의 중요한 정신으로 친다는 건 교사선언을 보고 처음 알았다. 전교조는 우리나라 헌법 전문을 그렇게 해석하면서 “교학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론, 분단에 편승한 남한 단독 정부 수립…(중략)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우리 사회에서 역사적 정통성의 잣대로 친일 여부를 사용한 쪽은 주로 좌파다. 좌파라는 말을 쓰고 싶진 않지만 조영기 고려대 교수(북한학과)의 표현이니 어쩔 수 없다. 종북이라는 말도 쓸 순 없지만 실제로 북에서는 일본이 남겨 놓은 제국주의 잔재와 봉건적인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반제반봉건 과제를 수행한 반면, 남한은 정반대의 길을 갔다고 주장한다.

전교조의 헌법정신에 딱 맞는 역사는 천재교육 교과서라 할 수 있다. 대표저자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인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으며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4·19정신을 계승한다는 헌법정신을 바탕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평가한다면 과연 분단국가가 최선의 길이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라고 2년 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럼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를 택하지 않고 분단을 막기 위해 김일성의 공산당 전체주의로 한반도 전체를 넘겨줬어야 최선이었단 말인가.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헌법정신에 입각하여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 정체성을 제고하도록’ 편찬상의 유의점에 명기돼 있다. 교학사 교과서는 보편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대한민국에 정통성이 있다고 보고 역사를 서술했다.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했다는 전교조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국인 상공업자는 경제적 자립이 곧 독립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겨 민족 경제 발전에 노력하였다’ 같은 대목이 그렇게 읽힐지 모르겠다. 전교조의 오해를 피하려면 ‘속셈은 돈이었고 실제로 친일파였다’라고 생뚱맞게 덧붙여야 할 판이다.

물론 사실관계의 오류는 바로잡아야 한다. 교학사 저자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주 교수는 7개 교과서 저자들을 대표해 정부의 수정 보완 지시를 못 받겠다고 맞서고 있다. 천재교육 교과서 베트남전쟁 파병 대목에 실제 있지도 않았던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적었다가, MBC 100분 토론에서 사례 하나도 못 대는 공개 망신을 당하고도 안 고친다면 심각한 문제다.

전교조와 함께 교학사 교과서 죽이기에 나선 광주 경기 전북 강원교육감들은 한결같이 전교조의 세를 업고 당선된 교육수장들이다. 전교조 이영주 수석부위원장은 7월에 열린 ‘맑시즘 2013’ 행사 포스터에 추천사까지 썼다. ‘학교,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해방’을 말한다는 포스터에는 교사들이 “경쟁교육 폐지”라는 팻말을 든 사진과 함께 ‘동료 샘(선생님) 제자들과 함께 오세요’ ‘청소년 추가할인’이라고 친절하게 쓰여 있었다.

그들은 대체 어떤 교과서로 우리 아이들을,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작정인지 묻고 싶다. 자칫하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관을 공유하는 시대로 갈 수도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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