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감찰’ 한 방에 무릎 꿇은 蔡 검찰총장 떳떳지 못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4일 03시 00분


-청와대 법무부 검찰총장의 갈등 속에 불거진 婚外자녀 소동

술집 여주인 Y 씨와 사이에 혼외(婚外) 자식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채동욱 검찰총장이 전격 사퇴했다. 어제 법무부가 채 총장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고 밝힌 직후다. 채 총장은 부산에서 근무하던 시절 만난 Y 씨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에도 ‘사실무근’임을 강조하며 완강하게 버텼지만 법무부가 감찰 착수를 발표한 지 1시간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물러나면서도 혼외 자식에 대한 보도는 사실무근임을 거듭 주장했다.

법무부는 “국가의 중요한 사정기관 책임자에 대한 도덕성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감찰 착수 배경을 밝혔다. 법무부가 채 총장에게 혼외 아들이 있다는 조선일보의 보도 이후 논란이 1주일가량 지속됐음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한 지 이틀 만에 감찰 착수를 발표하자 채 총장은 물러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그가 자리에 계속 있더라도 ‘식물 검찰총장’이 되기 쉬웠을 것이다.

채 총장은 설혹 혼외 자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감찰 대상에 해당한다. 채 총장과 알고 지낸 Y 씨는 언론사에 보낸 편지에서 채 총장이 자기 아이의 아버지임을 부인했다. 그러나 채 총장이 1999년 부산지검 동부지청 검사로 있던 시절부터 오랜 기간 알고 지냈으며 아이 학적부에 아버지 이름을 ‘채동욱’이라고 올리고, 자기 식구들에게까지 채 총장이 아이 아버지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채 총장도 부인하지 않았다. 검찰총장이 이런 논란에 휩싸여 있으면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렵고 검찰 조직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법무부가 감찰 착수를 발표하기 하루 전에 채 총장은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과는 별도로 유전자 검사 실시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신속한 의혹 해소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했다. 유전자 검사는 Y 씨가 동의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채 총장의 의지만으로는 안 된다. Y 씨가 동의하더라도 현재 아들이 미국 체류 중이어서 언제 성사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동안 청와대는 국가정보원의 댓글 수사 등과 관련해 채 총장과 갈등을 빚는 분위기였다. 특히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자 청와대의 분노가 컸다고 한다. 야권은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빌미로 삼고 있다. 얼마 전 청와대 개편 인사 때 경질됐던 곽상도 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해서도 검찰을 장악하지 못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야당은 법무부의 감찰 착수에 대해 “채 총장의 사퇴를 강요하기 위한 정치적 압박”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채 총장이 법무부의 감찰 착수에 즉각 사의를 표명한 것은 직전의 강경한 태도에 비추어 떳떳해 보이지 않는다. 채 총장은 사의 표명으로 공직자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사인(私人)인 그에게 혼외 자식의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는 사퇴문에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이나 유전자 검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혼외 자식 논란도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국민적 관심 속에서 진실 공방이 벌어졌던 이 사건이 흐지부지 끝난다면 허망하다. 만약 검찰총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 언론의 보도 내용이 사실인데도 언론사가 결정적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부인했다면 뻔뻔스러운 처신이다. 또한 언론사는 정황 증거만으로 혼외 자식이 있다는 단정적인 보도를 했다면 무책임하다.

채 총장은 사퇴문에서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공직자의 양심적인 직무 수행을 어렵게 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가 진정 진실 규명을 원한다면 국민에게 약속했던 정정보도 청구 소송과 유전자 검사를 계속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옳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그는 총장추천위원회를 거친 최초의 검찰총장이다. 이명박 청와대의 인사 검증과 국회의 인사청문회도 거쳤다. 그럼에도 Y 씨는 어떤 검증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의 법무부가 추천한 총장 후보를 처음부터 마뜩하지 않게 여겼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새 총장으로 정권의 검찰 장악력을 높일 수 있는 인물을 고를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검찰은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청와대는 검증 시스템의 강화와 함께 신망이 높은 검찰총장을 임명해 흐트러진 검찰 조직을 안정시켜야 한다.
#채동욱 검찰총장#사퇴#혼외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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