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 전문기자의 스포츠로 읽는 세상] 국가와 팀을 위해 뛴 선수들 가정에서 역할·존재감 중요

  • 스포츠동아
  • 입력 2013년 8월 28일 07시 00분


최근 남자배구 대표팀 은퇴가 확정된 여오현(현대캐피탈)과 통화했다. 대표선수생활 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1년에 많아야 3개월 집에 들어갔다. V리그 6개월간 합숙하고 시즌 끝나면 2∼3주 쉰 다음 대표팀에 소집됐다. 국제대회가 있을 때마다 가서 대회 마치고 일주일 쉬고 또 대표팀에 들어가면 1년이 금방 갔다. 그렇게 13년을 했더니 지난해부터 마음도 지치고 몸도 달라졌다.”

올해 36세다. 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두 명의 아이를 둔 학부모다. 삼성화재에서 현대캐피탈로 옮겼지만 아이들이 새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까봐 가족은 따로 두고 혼자 천안 숙소로 이사를 했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개발을 국가목표로 삼았던 시대, 아버지들은 회사와 조직을 위해 충성을 다했다. 밤낮이 없었다. 휴일과 휴가는 사치라고 여겼다. 회사는 평생 일터였다. 우선 내 가족이 잘 사는 것이 목표였기에 다른 뭔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위기 이후 패러다임이 달라졌다. 회사는 아버지에게 평생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대책 없이 떠밀려 나왔다. 이럴 때 버팀돌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은 가족이겠지만 아버지는 아내, 자식과 정(情)을 쌓아온 시간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버림받았다. 그래서 더 슬펐고 좌절했다. 지금은 자신의 능력과 관계없이 주위환경에 의해 30대도 40대도 가차 없이 내몰린다. 그래서 가족의 존재는 더욱 중요하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여기저기서 상처받고 삶의 목표가 흔들리는 가장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용기를 주는 것은 가족뿐이다.

프로스포츠 선수들 대부분이 많은 훈련과 경기, 합숙을 위해 집 밖으로 나돈다. 그래서 큰 돈과 인기를 보장받는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극소수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가족과 쉴 수 있는 기간은 딱 2달, 12월과 1월이다. 요즘은 그 마저도 자율훈련이라는 명분으로 줄이려고 한다. 프로축구도 배구도 농구도 마찬가지다. 합숙을 해야 선수들의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종목 특성상 합숙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전설의 프로복서 장정구가 기자에게 해줬던 말이다.

“감량을 하다보면 너무 배가 고파서 잠이 오지 않는다. 몇 km 밖의 음식냄새까지 코로 들어올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진다. 이런 내가 있으면 집에서 가족이 정상생활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밖에서 합숙을 한다.”

미혼자나 어린 선수들을 가둬놓고 생활을 통제하면 기량향상에 좋을 수 있겠지만 문제도 생긴다. 선수들이 세상을 너무 모른다. 그래서 선수생활을 마친 뒤 제대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다. 기혼자들도 문제는 있다. 남편의 부재로 우울증에 걸리거나 대화의 단절이 오래되면서 일탈의 길로 들어선 아내들도 있다. 아이 두 명을 둔 스타 선수 아내의 고백이다.

“나는 3명의 큰 아이를 데리고 산다. 모든 결정을 혼자 내려야 한다. 얼굴은 보지만 성적 스트레스에 빠진 남편에게 집안문제, 아이들 학교문제를 상의하지 못할 때는 힘들다.”

스타 아버지의 성적에 따라 감수성이 한창 예민할 때 아이들은 학교에서 영웅도 되지만 왕따도 당하는 쉽지 않은 경험을 해야 한다. 가정에는 아버지와 남편의 존재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외면한다.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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