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알파걸 여중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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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채팅으로 결속 다지고… 남학생보다 더 당당… 절반이 “성형도 OK”
■ 한국리서치 설문-본보 인터뷰 조사

‘미친 중2’란 말이 나올 만큼 요즘 중학생들은 다이내믹하고 다루기 힘들다. 그들은 부모 세대로 치면 고등학생 정도의 덩치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최근엔 학생들 사이의 새로운 문화적 흐름이나 변화가 모두 중학생들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여중생들의 생각과 행동은 깜짝 놀랄 정도다. 그들은 남학생들보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더 중시하고, 강력한 하위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가벼운 화장 정도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같은 또래의 남학생들보다 훨씬 외향적이다.

본보는 한국리서치의 2002∼2012년 중학생 대상 설문조사(매년 400∼600명 대상)와 지난달 실시된 집단면접조사를 바탕으로 중학생 및 교사를 인터뷰해 21세기 대한민국 여중생들의 현주소를 알아봤다.

○ 혼자서만 다니는 것 두려워해

여중생들은 남학생들보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중요시한다. 현재 여중생들 사이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오피니언 리더’는 선후배와 친구가 많아 주변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아이들이다. 이들은 남학생 사이의 ‘일진’처럼 신체적으로 위협을 가하거나 물건을 빼앗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않은 위력을 갖고 있다.

서울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에 다니는 B 양은 지난 학기 반장선거 때 친구들에게 ‘나 반장 나간다∼^^’는 딱 한 줄의 메시지를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그러고는 단독으로 출마해 자동 당선됐다. 네트워크가 넓은 B 양과 괜히 경쟁했다가 피해를 볼까봐 걱정한 다른 학생들이 모두 출마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여학생의 경우 함께 어울려 다니는 집단의 구성원 수도 남학생보다 많다. 경기도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 교사 J 씨는 “남학생들은 보통 두세 명이 몰려다니는 데 비해 여학생들은 7, 8명이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여중생들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상황은 왕따처럼 혼자만 다니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며 “감성적으로 더 예민한 여학생들이 힘센 아이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집단으로 다니는 걸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K 양(중2)은 중학교 입학 이후 지금까지 앞머리로 이마를 완전히 덮는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K 양의 친구들도 모두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K 양은 “이마를 내놓는 애들은 일진 아니면 왕따 딱 두 종류”라고 말했다. 이마를 덮는 헤어스타일은 이들의 동질성을 나타내는 ‘코드’다. K 양과 친구들은 체육대회에서 달리기를 할 때도 한 손으로 앞머리를 잡고 뛴다. 그들에겐 체육복이 들려 배꼽이 보이는 것보다 바람에 머리가 날려 이마가 보이는 것이 더 치욕적이다.

동일한 헤어스타일이 유행하는 건 엄마 세대의 ‘부풀린 앞머리’(1980년대)와 이모 세대의 ‘깻잎머리’(1990년대)처럼 예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여중생들의 집단주의에는 예전과 좀 다른 면이 있다. 지난달 중학생이 된 Y 양(서울 성동구)과 친구들은 하얀 선이 3줄 들어간 트레이닝복을 거의 같은 시기에 구입했다. 하지만 트레이닝복의 색깔은 각각 달랐다. 요즘 여중생들은 이처럼 같은 브랜드 옷이라도 색상이나 모양이 조금 다른 것을 선호한다. 유행을 따르면서도 나름의 개성을 찾는다는 뜻이다. Y 양은 “특정 상표 옷을 유니폼처럼 똑같이 입는 남학생들의 행동은 촌스럽다”고 말했다.

○ 알파걸로 자라나는 여중생

친구를 중요시하는 여중생들 사이에서 카톡 같은 메신저는 없어서는 안 될 의사소통 수단이다. 한국리서치의 김기주 이사는 “개인이 아닌 그룹 단위로 친구를 사귀다 보니 e메일보다 여러 명이 동시에 대화할 수 있는 메신저가 인기”라고 말했다. 메신저의 사용은 자연히 e메일의 쇠퇴를 가져왔다. e메일을 사용한다는 여중생은 2002년 89.2%에서 지난해 27.5%로 줄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P 양(중2)은 “e메일은 절대 안 쓴다”고 말했다. “e메일은 바로바로 답장이 안 오니까 채팅하는 맛이 없다”는 게 이유다.

요즘 중학생 대다수는 방과 후 학원에 다닌다. 학원 스케줄이 서로 다른 아이들은 카톡으로 대화하다 주말이면 서로 만나 나들이를 즐긴다. ‘지난 주말에 친구들과 만났다’고 응답한 여중생은 2002년 25.0%에서 지난해 47.5%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여중생들은 남학생들보다 당연히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난해 조사에서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있다’는 여중생은 47.3%나 됐다. 남학생은 그 절반인 22.7%밖에 되지 않았다. 여중생들은 성형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다.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성형해도 괜찮다’고 답한 여학생은 51.3%(남학생 23.9%)로 절반이 넘었다.

화장도 꽤 한다. P 양은 “내 주변에는 노는 애들을 빼놓고는 화장을 하는 아이들이 없다”고 말했지만 “비비크림은 많이 바른다”고 했다. 비비크림 정도는 화장 축에도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최근 학업 성적에서 남학생을 추월하게 된 여중생들은 자신감마저 남학생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는 항목에 남학생은 24.9%, 여학생은 31.1%가 ‘그렇다’고 답했다. ‘의사표현을 잘한다’는 응답도 여학생(48.8%)이 남학생(34.2%)보다 훨씬 많았다. ‘얼마나 잘사느냐는 내가 지금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답한 비율도 여학생(59.1%)이 남학생(54.2%)보다 높았다.

이렇게 커진 자신감이 성별 역할에 대한 전통적 인식을 바꿔놓을 조짐도 보이고 있다. ‘아기를 낳는 것은 내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라고 답한 여학생은 33.7%에 달했다. 5년 전인 2007년보다 약 7%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남자도 설거지 등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답한 여학생은 71.5%로 남학생(47.5%)보다 훨씬 많았다.

문권모·김현진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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