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도로공기, 중금속 이어 ‘白金의 역습’

  • Array
  • 입력 2013년 4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 카드사는 최고 등급의 회원에게 ‘플래티넘’이라는 지위를 부여한다. 실버(은)나 골드(금) 지위보다 높은 플래티넘이 백금을 뜻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백금은 매장량이 금의 4분의 1에 불과할 만큼 귀한 금속이다. 그런데 카드회사에서 플래티넘 회원을 비정상적으로 남발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회원에게 돌아가고 카드사도 각종 혜택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 속에서도 백금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지면 귀한 금속도 건강에 해를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

전효택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팀은 최근 서울 도심지역의 백금 오염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서울 31개 지역의 도로에서 먼지를 수집하고, 그 속에서 백금과 팔라듐 등 백금족 원소의 오염 정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교통량이 많은 강남역 부근에서 백금의 함량이 먼지 1g에 최고 444ng(나노그램·1ng은 10억분의 1g), 팔라듐은 최고 1215ng으로 나타났다. 특히 시내 평균치는 백금이 115ng으로, 경기 고양시 일산 등 서울 외곽의 4ng과 비교할 때 30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었다.

이런 백금 오염의 원인은 바로 자동차 배기가스를 정화하는 장치다. 백금은 배기가스를 정화하는 촉매변환기의 핵심으로, 엔진에서 배출되는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 등의 배기가스가 백금 팔라듐 로듐 등 백금족 원소로 이뤄진 촉매를 거치면 인체에 해가 되지 않는 이산화탄소나 물 등으로 바뀐다.

그러나 자동차가 오래되고 촉매변환기가 마모되면 백금족 원소가 대기 중으로 빠져나온다. 교통량이 많은 곳일수록 백금족 원소의 방출량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사람이 백금족 원소에 과다하게 노출되면 비염 알레르기 빈혈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특히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2차로 이상 도로에서는 2차로 이내 도로보다 백금의 수치가 6배 높았으며, 나들목처럼 차량이 일시정지하는 곳에서도 먼지 1g에 백금 함량이 178ng까지 나타났다. 정지 상태에서 출발하는 과정에서 불연소된 배기가스와 함께 백금이 배출된다는 것이다. 도심 속 팔라듐의 함량은 먼지 1g에 평균 584ng으로 나타났으며, 백금의 분포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백금 함량이 높은 경우 니켈이나 납, 아연 등 중금속 원소의 함량도 높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동차 업계 역시 환경오염 물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내년부터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최대 60% 더 줄이도록 규정을 강화할 예정이다. 자동차 촉매변환기에 들어가는 백금족 원소의 역할이 더 부각되는 가운데, 연구팀은 백금족의 양면성을 다스릴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독일 베르크만스하일 대학병원 연구진은 자동차 촉매변환기에서 나오는 백금 농도의 권고 기준을 공기 1m³에 150ng으로 삼고, 100ng 이하면 안전하다고 제안했다.

오스트리아 건강및식품안전국 만프레트 자거 박사팀과 공동으로 진행한 이번 연구는 서울시의 결과와 함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도 백금족 원소 현황을 분석해 ‘환경지구과학과 건강’ 학술지에 투고한 상태다.

전 교수는 “지금까지 국내에는 백금족 원소에 대한 환경 기준이나 인체 위해성과 관련한 연구가 전혀 없었다”며 “교통량이 증가할수록 백금족 원소와 중금속 원소의 오염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백금#환경 오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