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미영씨, 남의 슬픔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

  • 입력 2009년 7월 19일 21시 50분


초록빛 꿈을 줬던 사람. 31년 동안 수많은 산에 내뱉었던 거친 숨소리를 열매 맺게 해줄 사람. 컨디션이 안 좋아도 잠깐만 휴식을 취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웃던 사람. 히말라야를 오를 때면 한 발짝 거리에서 나를 지키고, 내가 지켰던 사람. 절대 잃어선 안 될 사람을 놓친 그는 영정 앞에 무릎을 꿇은 채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다. 힘겹게 천천히 두 번 절을 한 후 돌아섰다. 하지만 걸음을 쉽사리 떼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듯했다.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해발 8126m)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다 11일 추락 사고로 숨진 고(故) 고미영 씨(42)의 시신이 19일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왔다. 그와 함께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밟았던 김재수 대장(46)은 고 씨의 사진을 가슴에 품은 채 고국 땅을 밟았다.

김 대장은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캠프2 30m 위 지점에 로프가 눈 속에 묻힌 10m 구간이 있었는데 고 씨가 그 곳을 통과하면서 고 씨의 신발 밑 아이젠이 옷이나 다른 아이젠 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고 씨가 많이 지친 상태가 아니어서 단순히 미끄러졌다면 제동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 대장이 가슴에 묻은 고 씨는 '자신의 기쁨보다 남의 슬픔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김 대장은 "고 씨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에서 11번째 8천m 정상에 서서 굉장히 기쁘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대원 1명이 낭가파르바트 등정 중 사라진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말은 정상에서 전한 고 씨의 마지막 메시지가 됐다. 고 씨의 마음 씀씀이가 히말라야에 스며든 덕분일까. 사고 후 고 씨 구조 작업은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사고 지점에는 수백 개의 돌들이 떨어졌지만 구조대 중 다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김 대장과 고 씨는 히말라야 14좌 완등 후 함께 히말라야 등반 학교를 세울 계획이었다. 김 대장은 "히말라야를 14좌를 정복한 남자와 여자가 힘을 합쳤다면 파급 효과가 컸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김 대장은 고 씨의 사망과 함께 꿈을 잃었다.

고 씨의 영결식은 21일 오전 9시 국립의료원에서 열린다. 시신은 영결식 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하동 연화장으로 옮겨져 화장된다.

한우신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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