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의 꿈 유럽 진출 대박과 쪽박사이

  • 입력 2009년 7월 10일 02시 57분


■ 국제 에이전트 평가 ‘국내선수들 이적 성적표’

지금 유럽 축구리그는 뜨겁다. 시즌은 끝났지만 선수들의 이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유럽 축구의 이적도 이제 남 얘기가 아니다.

최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재계약과 이근호(24)의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이적 등은 국내외 축구팬의 관심거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만 해도 해외 리그를 경험한 선수는 40여 명. 국내 선수의 해외 이적에 대한 성공과 실패, 필수조건을 국제축구연맹(FIFA) 국제 에이전트 및 관계자 10명에게 들어봤다.

○ 박지성과 차범근, 이적의 성공 사례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박지성을 1순위 또는 2순위로 꼽았다. 박지성은 한일 월드컵 직후 거스 히딩크 감독을 따라 PSV 에인트호번(네덜란드)으로 이적했다. 여기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한 박지성은 200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고 2008∼2009시즌에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했다.

수원 삼성 차범근 감독(56)도 성공적인 이적 사례로 꼽힌다. 차 감독은 1978년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다름슈타트, 프랑크푸르트, 바이엘 레버쿠젠 등에서 10년간 뛰며 308경기에서 98골을 넣었다. 당시 분데스리가는 유럽 최강의 리그였다.

○ 이천수-이동국, 외국 떠돌다 국내행

최근 팀 무단이탈 사건으로 임의탈퇴 공시된 이천수(28)는 가장 실망스러운 이적 사례로 꼽혔다. 이천수는 2003년 한국 선수 최초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고 두 번째 해외 진출(네덜란드 페예노르트)도 1년 만에 짐을 싸야 했다. 한 설문 참여자는 “이천수는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좋은 조건으로 재진출한 의미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K리그 득점 선두인 이동국(30·전북 현대)도 아쉬움이 남았다. 2001년(베르더 브레멘·독일)과 2007년(미들즈브러·잉글랜드) 두 번의 해외 진출에서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이며 귀국했다.

○ 기술, 체력, 정신력 갖춰야

지금도 많은 선수가 해외 무대 진출을 목표로 땀을 흘리고 있다. 설문 참여자들이 말하는 해외 진출의 필수조건은 기술, 체력, 정신력 등 세 가지. 한 설문 참여자는 “90분간 쉴 새 없이 뛰며 공격과 수비 전환이 빠른 유럽 리그에서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 K리그 선수 중 실력만으로 유럽에 진출할 선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유럽에 나가도 성공할 선수로는 기성용(FC 서울)이 1순위로 이름을 올렸다. 설문 참여자들은 기성용에 대해 공수의 균형이 잡혀 있고 영어 구사 능력이 좋은 점을 높게 평가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설문에 참여한 분(가나다 순)

김민재 IFA 대표

김성호 FC코퍼레이션 과장

김정하 프랑스축구아카데미 대표

류택형 지쏀 이사

윤기영 인스포코리아 대표

이동엽 텐플러스스포츠 대표

이영중 이반스포츠 사장

정효웅 MBC-ESPN 해설위원

최낙영 풋볼스타팩토리 대표

추연구 IB스포츠 부장

박지성 75억원 이영표 37억원 박주영 33억원
■ 이적료 얼마나 받았나

9300만 유로(약 1630억 원).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둥지를 옮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4)의 이적료다. 호날두는 2001년 지네딘 지단이 유벤투스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옮길 때 기록한 이적료 7500만 유로(약 1320억 원)를 넘어서며 단숨에 역대 최고액 선수가 됐다. 레알 마드리드는 앞서 AC 밀란에 6750만 유로(약 1188억 원)를 지불하고 카카(27)를 영입했다. 이는 역대 최고 이적료 3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축구 스타들의 이적이 활발한 여름마다 헤드라인을 달구는 단골 주제는 바로 이적료다. 선수 이적을 좌지우지하는 이적료는 구단과 구단 사이에 거래되는 선수의 몸값이다. 구단 쪽에선 선수에게 많은 투자를 했지만 그 선수가 다른 팀으로 떠날 경우 손해가 생긴다. 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이적료이다. 선수들은 이적료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축구 에이전트인 김민재 IFA 대표는 “이적료는 큰 구단이 작은 구단 선수들을 마구잡이로 빼가는 등의 횡포를 막는 도구”라며 “선수의 나이, 장래성, 상품성 등 모든 것이 이적료 산출 시 고려 대상”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국내 선수들의 이적료는 어떨까. 이적료 ‘킹’은 단연 박지성(28)이다. 박지성은 2005년 PSV 에인트호번에서 맨유로 옮기며 약 75억 원의 이적료를 기록했다. 같은 해 토트넘 홋스퍼로 옮긴 이영표(32)는 수비수로 꽤 큰 액수인 약 37억 원의 이적료를 원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에 안겨 줬다. 이천수(28)는 2003년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하며 당시로선 파격적인 약 42억 원의 이적료를 받기로 계약했지만 기대 이하의 활약으로 이적료의 절반도 챙기지 못한 걸로 알려졌다. 지난해 AS 모나코로 이적한 박주영(24)의 이적료는 33억 원, 설기현(30)은 2007년 레딩에서 풀럼으로 이적하며 약 30억 원의 이적료를 기록했다.

이적료를 한 푼도 받지 못한 선수도 있다. 올해 위건 애슬레틱으로 이적한 조원희(26)는 지난해 말 수원 삼성과의 계약이 끝나 자유계약선수로 풀리면서 위건이 수원에 이적료를 지불할 의무가 사라졌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IB스포츠 에이전트 추연구 부장의 24시▼

9시 출근 e메일 체크
오전회의 구단관계자 면담
저녁 피스컵 8강전 관람후
밤11시 기성용 면담-식사
새벽2시 메일체크-잠자리

“밤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간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축구 에이전트인 IB스포츠 추연구 부장의 하루는 오전 9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회사로 출근하면서 시작된다. 8일 오전 9시 반. 그는 자리에 앉아 e메일을 꼼꼼히 체크했다. 선수를 소개하는 해외 에이전트들의 메일에서부터 거래처 사람들의 메일까지. 최근엔 더 바빠졌다. 그가 담당하는 FC 서울 기성용(20)의 해외 이적설이 꾸준히 흘러나와서다. 그는 이날만도 10통이 넘는 전화를 기자들로부터 받았다. 메일 확인 뒤엔 축구팀 오전 회의가 이어진다.

오후 일정은 FC 서울 구단 관계자들과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에이전트의 가장 큰 임무는 선수와 구단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 ‘보이지 않는 손’ 에이전트에게 구단 관계자는 인맥을 구축하는 중요한 네트워크다. 이후 그는 김포공항으로 이동해 전남 광양에서 올라 온 기성용의 아버지 기영옥 씨를 만났다. 그는 기 씨와 함께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이동했다. 오후 8시부터 FC 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피스컵 8강 경기를 지켜봤다. 추 부장은 평소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 유소년 축구 경기장까지 찾아다니며 꼼꼼하게 선수들을 지켜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포츠 기자 출신인 그는 “훌륭한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선 왕도가 없다. 일단 경기를 많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저녁식사 시간은 오후 11시. 기 씨 부자와 함께 자리를 가졌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 날 오전 1시 반.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와 메일을 확인한 뒤 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바빠도 보수는 외국의 슈퍼 에이전트에 비할 게 아니다.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바쁜 건 참을 수 있습니다. 축구를 사랑하는 선수에게 뛸 곳을 찾아줄 수 없는 게 정말 참기 힘들죠. 유망주를 발굴해 그 선수의 성공을 지켜보는 기분은 느껴본 사람만 압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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