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DJ의 복사기 노릇 하는 민주당

  • 입력 2009년 7월 6일 20시 46분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5일 “2012년 정권 교체를 위해 제2창당에 버금가는 수준의 민주개혁진영 통합을 추진하겠다”면서 “통합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고 문호개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19일 전인 6월 16일이다. 그날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정 대표 등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민주개혁진영이 힘을 합쳐야 한다. 민주당이 맏형 역할을 해야 하며 자기를 버리고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DJ는 “망원경으로 2012년까지를 보고, 현미경으로 이번 6월 국회를 봐야 한다”고도 했다.

민주주의 위기, 서민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정 대표와 민주당 사람들이 올해 들어 입에 달고 사는 소리다. 이 말도 DJ가 원전(原典) 소유자다. 2008년 12월 16일 노벨 평화상 수상 8주년 기념 강연에서 DJ는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했다. 그래도 못미더웠는지 올해 1월 22일 신년인사차 방문한 민주당 지도부에 다시 한 번 이 말을 그대로 전수했다. 이후 민주당은 3개 위기론을 중심으로 각각 국회의원 팀을 구성해 실태조사 활동을 진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민주당의 ‘DJ 따라하기’는 더욱 역력하다. DJ가 노 전 대통령을 평소 그렇게 살갑게 여긴 줄은 미처 몰랐다. 그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느낌”이라고 했고, “노 전 대통령이 느낀 치욕과 좌절감, 슬픔을 생각하면 나라도 그런 결단을 했을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은 상주(喪主)를 자처했고, ‘노무현 조문 정국’의 불을 지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등 5가지 조건을 내걸고 국회 등원(登院)까지 거부했다. 국민을 골탕 먹이는 정치파업이다.

DJ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6월 11일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자.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으로 들고 일어나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惡)의 편”이라고 선동했다. 민주당은 더욱 과격해진다. 정 대표와 이강래 원내대표는 ‘제2의 6·29’를 언급했고, 의원들 입에서 ‘정권 퇴진’이니 ‘이명박 씨’라는 소리가 스스럼없이 튀어나왔다. 의원직 총사퇴나 단식, 삭발을 하자는 초강경 제의도 쏟아냈다. 지금 민주당에는 갑자기 ‘행동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모두 ‘양심들’이라면 지지율이 도로 한나라당에 역전당했겠는가.

DJ와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팔고 있지만 정작 그는 DJ처럼도, 민주당처럼도 살지는 않았다. 가족의 돈 수수 사실이 부끄러워 ‘나를 버리라’고 했고, 국민을 편 가르기는 했을망정 정치적 상대를 ‘타도의 대상’으로 선동하진 않았다. 정치적 손실을 무릅쓰면서까지 DJ정부 때의 대북 불법송금과 국가정보기관의 불법감청도 밝혀냈다. 북한의 1차 핵실험 땐 “이 마당에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가 힘든 것 아니냐”고 한때나마 바른 소리도 했다.

민주당은 DJ 등에 업혀 따라가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중도(中道) 강화와 서민 행보를 앞세운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그만 중원(中原)까지 선점당하고 말았다. 민주당의 ‘텃밭’은 이제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상대는 쇄신이다 뭐다 하면서 그나마 변하려는 듯 보이고 있는데 자신들은 시대착오적인 ‘DJ의 프레임’에 갇혀 오히려 퇴보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수구(守舊)정당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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