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태현]또 ‘남북’에 밀린 ‘한미’

  • 입력 2007년 8월 29일 03시 01분


코멘트
지한파 미국인이 북한의 수해 소식을 듣고 감히 하늘의 공정함을 의심하는 말을 내게 했다. 한반도가 그리 넓은 땅이 아니건만 유독 북한에만 자주 수해가 발생한다고 하는 소리였다.

나는 북한의 수해는 천재(天災)라기보다 인재(人災)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연료용 남벌이 한 원인이고, 치산치수를 게을리 한 국가의 정책 실패가 또 하나의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투입을 늘리면 산출이 는다는 사회주의 경제논리가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경작지를 늘리고자 산을 깎아 헐벗게 만들었다. 폭우는 헐벗은 산비탈의 흙을 강으로 끌고 가 하상을 높이고 범람을 낳았다. 북한의 사정상 하천 준설은 엄두도 못 내고 이미 높아진 하상은 더 높아져 앞으로도 북한의 수해는 더욱 자주, 더욱 크게 닥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수해를 인재가 아닌 오로지 천재의 문제로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회가 있다. 바로 남북 정상회담이다. 남북의 최고 외교카드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핵 무장 욕심을 버리고 국제적으로 정상적인 국가가 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 치산치수에서 세계적 성공 사례인 동포국가 한국이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고 6자회담은 과거 어느 때보다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그런데 수해가 이 모든 기회를 망칠 국제정치적 재앙이 될까 봐 크게 걱정된다. 수해를 이유로 8월 말로 합의했던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10월 초로 연기됐기 때문이다. 9월 하순으로 예정됐던 노무현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과 한미 정상회담도 취소되는 등 한반도 국제정치의 흐름에 단절이 생겼다. 남북 정상회담 자체의 성격과 효과가 변질될 여지도 생겼다.

첫째, 시점이 문제다. 10월이면 대통령선거의 본선이 한창일 때다. 남북 정상회담이 지니는 국내정치적 의미가 크게 고조되어 국제정치적 의미를 압도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정치적 고려에서 정부에 온갖 주문을 넣을 것이고 임기 말의 정부는 외면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둘째, 순서가 문제다. 남북 정상회담이 제아무리 민족 프로젝트라고 하더라도 다뤄야 할 의제는 국제정치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핵 문제, 남북 경협, 평화체제 모두가 그렇다. 국제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어떤 민족 프로젝트라도 사상누각임이 일전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문제로 잘 드러났다.

국제적 여건을 미리 살펴 민족 프로젝트의 한계를 설정하고 그 한계를 넘나드는 선에서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를 도출한 다음 국제적 장(場), 특히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지는 것이 순리고 실리다.

수해를 이유로 정상회담을 연기하고 한미 정상회담을 취소하는 것은 모양과 실속에서 어줍다. 미리 계획했던 한미 정상회담을 취소하면서까지 10월 초 정상회담에 합의한 이유, 또 한미 정상회담만을 위해 미국에 가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민족 프로젝트와 국제 프로젝트를 대립관계에 놓고 민족만을 앞세우는 이 정권의 고질병, 양분법적 사고의 소산이다.

그와 같은 사고의 현실적 효과는 재앙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모양새로 정상회담에 매달리니 남북 회담을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추진한다는 의혹을 더욱 부추긴다. 북한의 협상력만 높여 주고 회담의 성과도 어렵게 만든다. 그 결과에 대한 국내적, 국제적 지지의 동원도 어려워진다.

회담 결과는 과거처럼 공염불, 북한의 수해는 내년에도 닥칠 가능성이 높다. 피할 수 있는 재앙을 개인과 집단의 권력욕으로 말미암아 피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천재인가, 인재인가.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