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다음 날 “며칠 밤을 새우더라도 당의 색깔과 이념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 이면에는 그런 개인사(史)도 깔려 있을 것이다. 이 후보는 이제 한나라당의 ‘주류 중 주류’로 등극했다. 비주류에서 주류의 정점에 오른 만큼 ‘한나라당의 이명박화(化)’는 과거 이회창 후보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게 진행될지 모른다. 잘하면, 정말 잘하면, 경상도만 믿고 늘 ‘본전치기’에 만족해 온 한나라당이 그동안의 안주(安住)를 떨쳐 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역시 ‘어떻게?’다. 지도부 교체? 정책 수정? 내년 총선 물갈이? 그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하책(下策)일 뿐이다.
나는 그 해답이 이 후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선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이명박이란 인물이 특히 수도권의 30, 40대 화이트칼라들에게 ‘진보적인 후보’로 투영된다는 사실이었다. 선뜻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공통된 증언이었다. 박근혜 후보가 아무리 따라잡아도 여론조사 지지율 격차가 ‘10%포인트’ 이내로 좁혀지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30, 40대 화이트칼라라면 광의의 ‘386세대’라고 할 수 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12년간 대학을 다닌 세대가 중심이다. 통상 반(反)한나라당 또는 비(非)한나라당 성향으로 분류되던 세대다. 그 시절 캠퍼스의 공기가 그랬다. 그런 세대가 ‘이명박 신화(神話)’의 견인차가 됐다는 사실이 내겐 좀 뜻밖이었다.
경선 결과 이, 박 두 후보의 여론조사 격차는 8.8%포인트였다. 일부 여론조사 전문기관에서 “투표가 3일만 늦춰졌어도 결과는 모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이명박 신화’는 추락의 조짐을 보였다. 이 후보의 경제 살리기를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이던 화이트칼라층이 이명박식 성장담론의 ‘몰가치성(沒價値性)’을 깨달으면서 ‘유보적 지지’로 선회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386세대의 특징 중 하나는 다분히 가치지향적이라는 점이다. ‘386권력’의 무능함에 염증을 느끼면서 서랍 속에 던져 넣었던 자기 정체성이지만, 이 후보의 도덕성 시비가 임계점에 이르자 잊고 있던 ‘가치’를 떠올리기 시작한 것일까. 마치 한일(韓日) 사이처럼 이젠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하는 ‘유사동맹(類似同盟·Quasi-Alliance)’ 관계로 바뀐 것일까.
386세대가 12월 19일까지 이 후보를 자기 정체성과 충돌하지 않는 ‘진보적 후보’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등을 돌릴지가 궁금하다. 한나라당 개혁의 성패는 이 ‘유사동맹군’의 판정을 기다려야 할 것이고, 이 후보의 본선 경쟁력도 바로 이 ‘유사동맹군’의 선택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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