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상돈]정상회담이 대선용 ‘깜짝 쇼’라면

  • 입력 2007년 8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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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8월 말에 평양을 방문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보수 진영이 우려한 상황이 현실로 닥쳐 왔다. ‘햇볕’이란 이름의 조악한 유화(宥和)정책이 초래한 북핵 문제가 어떻게 처리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4개월도 남겨 두지 않은 시기에 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석연치 않다. 우리의 대북협상은 고작해야 일방적 퍼 주기이기 때문에 평양 방문은 12월 대선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깜짝 쇼’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당 후보는 야당 후보가 갖지 못하는 대단한 프리미엄을 한 개 갖고 있는데, 외교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대외정책을 선거에 유리하게 조종할 수 있는데 미국에선 11월 대선 직전의 그 같은 사건을 ‘10월의 이변(October Surprise)’이라고 부른다.

1972년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베트남 평화회담의 미국 대표이던 헨리 키신저가 “평화가 임박했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돕기 위함이었다. 선거가 끝난 후 키신저는 “평화가 가까이 있을 수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닉슨 대통령이 북베트남에 대해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하고 나서야 북베트남은 파리 협정에 서명했다.

유권자 만만하게 보는 오판

1980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 진영이 가장 우려했던 점은 지미 카터 행정부가 이란 정부와의 비밀협상을 통해 인질로 잡혀 있던 미국 대사관 직원을 선거일 전에 송환하는 ‘10월의 이변’을 연출할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카터는 레이건에게 참패했다.

이란 정부는 레이건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날에 인질을 되돌려 보냈고, 카터는 민간인 신분으로 이들을 환영해야 하는 수모를 당했다. 레이건의 러닝메이트이던 조지 부시가 인질 석방을 지연시키도록 이란 정부와 막후 협상을 벌였다는 의혹이 나중에 제기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제시되지 못했다.

2004년 10월 말 미국 대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알자지라 통신은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맹렬히 비난하는 오사마 빈라덴의 비디오를 공개했다. 빈라덴은 자신이 건재함을 알려 재선에 나선 부시를 곤궁에 빠뜨리려 했을 것이나, 결과적으론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부시에 대한 지지도를 상승시킨 효과를 가져왔다고 평가된다.

비슷한 경우로는 1987년 11월 말에 일어난 대한항공 858편 사건을 들 수 있다. 858편 항공기는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은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에 의해 폭파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은 남한 사회를 혼란시키기 위해서 이런 만행을 저질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가장 싫어했던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그해 12월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기여했다.

노 대통령의 방북이 여권 후보를 돕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 유권자의 수준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태도다. 노무현의 평양 방문은 대한항공 858편 폭파처럼 대선에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문제는 오히려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이 노무현-김정일 회담을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고 두 사람이 무엇 무엇을 해결하라는 식으로 주문이나 하다가는 남과 북의 좌파에 휘둘리고 말 것이다. 한나라당이 노무현-김정일의 ‘깜짝 쇼’에 의연하고 강경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을 후보로 뽑아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나라당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돌이켜 보면 2002년 대선은 당시 여권이 좌파 세력과 함께 연출한 ‘깜짝 쇼’의 연속이었다. 김대업의 허위 폭로, 촛불시위, 수도 이전 공약, 정몽준과의 여론조사 등 모든 것이 ‘깜짝 쇼’였다. 당시 한나라당 선거본부는 속수무책으로 일관했다.

한나라당은 수도를 이전하면 서울 아파트 값이 폭락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아 전세 사는 서울시민 표와 충청-대전권 표를 함께 날려 버렸다. 한나라당이 노무현을 위한 ‘깜짝 쇼’를 벌인 셈이니, 당시 노 후보 진영이 얼마나 좋아했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깜짝 쇼’로 얼룩진 2002년 대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12월 19일 밤 한나라당은 웃지 못할 것이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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