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장석]홍보처 핑계대며 장막 뒤로 숨는 경찰

  • 입력 2007년 8월 1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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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일이다. 충분한 사전 협의도 없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취재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바꾸라는 데 반발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15일 만난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사무실 출입을 통제하고 전화 취재까지 홍보실을 통해 사전 승인 받도록 한 경찰의 취재 제한 조치에 대한 언론의 반발에 공감을 표했다.

이 관계자는 “솔직히 상당수 경찰은 ‘기자들 얼굴 자주 안 봐도 되니 좋은 것 아니냐’고 대놓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14일 발표된 경찰의 ‘언론 봉쇄조치’는 군사정부 시절의 ‘보도 지침’을 연상시킨다. 군사정부 때도 기자들의 경찰서 출입이 자유로웠던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퇴보한 셈이다.

경찰이 다른 정부기관에 비해 개방의 폭이 컸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최일선 대민(對民) 기관에서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는지 언론이 감시해야 한다는 국민의 바람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국정홍보처의 지침을 들어 이를 무시하려 하고 있다.

국정홍보처가 기자실 통폐합 조치를 발표한 5월 22일 이후 기자들은 여러 차례 경찰청에 취재 시스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문의했다. 이때마다 경찰청은 “어떤 지침도 받지 못했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경찰청은 정부 조치에 대해 ‘언론자유 침해’ 논란이 한창이었던 6월 21일 이미 청사 전체의 출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자와 통화한 국정홍보처 관계자는 “기자의 경찰서 출입을 제한할 것인지 등은 조직의 특수성을 감안해 경찰이 자체적으로 판단토록 했다”며 “세부 사항까지 일일이 지침을 내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이 국정홍보처의 지침을 핑계로 언론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장막’을 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조치를 보며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사건이 떠올랐다. 언론의 보도가 없었다면 영원히 묻혔을 사건이었다. 언론의 끈질긴 보도로 김 회장은 구속됐고, 홍영기 서울청장이 물러났다. 국민은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수사의 투명성을 높여 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경찰은 거꾸로 언론과의 결별을 선택한 것 같다. 무엇이 진정 경찰조직의 발전을 위하는 것인지 경찰 수뇌부는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황장석 사회부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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