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되려 하지 않고 언제나 최선 다했을 뿐”

  • 입력 2007년 8월 1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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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금통위원 홍일점 이성남 씨

연보라색 재킷과 그 안에 받쳐 입은 보라색 톱, 풍뎅이 모양의 보라색 귀고리와 브로치, 그리고 빨간색 입술….

이성남(60·사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늘 자신의 나이보다 족히 20세 이상 젊어 보이는 화려한 차림새로 다닌다.

겉모습은 발랄한 ‘공주님’이나 한은 내 별명은 ‘왕 언니’ 또는 ‘여장부’인 강철 여인.

한은 최고 의결기구인 금통위 위원 7명 중 홍일점인 그는 역대 한은 금통위원 중 유일한 여성 위원으로 현재 국내 금융권 여성 최고위직이기도 하다.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와 1969년 씨티은행에 입사해 21년간 근무하며 재정수석에까지 올랐다. 금융감독원 검사총괄 담당 부원장보와 국민은행 감사 등을 거쳐 2004년 4월부터 한은 금통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국내 금융권에서 그는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이토록 꾸준히 내고 있을까.

“수많은 리더는 자신이 전지전능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부하 직원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존심 때문에 그냥 넘어가죠. 하지만 아무리 유능한 리더라도 모든 분야에 정통할 수는 없어요. 후배를 키워서 잘 활용하는 게 리더의 덕목이죠.”

그를 경쟁 상대로 보는 남성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던 적이 많다. 뛰어난 업무 추진력으로 씨티은행에서 인사 등 3개 분야의 책임자급 지위를 동시에 맡았을 때도 그랬다.

금감원에 들어가 586급 컴퓨터 386대를 주문한 일은 지금도 회자된다. 당시 386컴퓨터를 다루기에 바빴던 금감원 직원들에게 예산에도 없던 최신형 컴퓨터를 사 준다고 하자 간부들이 모두 반대하고 나선 것. “인프라 없이 어떻게 금융 선진화를 이루느냐”며 밀어붙였다.

최근 한은은 이례적으로 두 달 연속 콜금리를 올렸다. 하필 콜금리 인상 직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터져 나왔다. 금리 인상 조치로 소비가 둔화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이 위원은 “금통위는 지금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충분히 예측하고 토론한 뒤 결정했다”고 말을 아꼈다. “최고가 되려고 한 적은 없다. 언제나 최선을 다했을 뿐”이란 그의 말을 떠올려 보면 금통위와 금융권 ‘왕 언니’의 고민이 십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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