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석방→취소’ 가족들 ‘희망→절망’ 오락가락

  • 입력 2007년 8월 1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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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하겠다→풀어줬다→돌아왔다→석방예정

탈레반측 대변인 11일 밤부터 계속 말 바꿔

양측 협상-휴식-협상 이틀동안 릴레이 회담

외신 “탈레반 수감자 맞교환 고집… 낙관 일러”

‘첫 대면 협상 시작’ ‘아픈 여성 인질 2명 우선 석방’ ‘우선 석방 결정 취소’ ‘월요일(13일)로 석방 연기’….

11일 0시를 막 넘긴 시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과 한국 정부 대표단이 첫 대면협상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이틀 동안 한국의 피랍자 가족들은 희망과 절망이 엇갈리는 잇단 보도에 가슴을 졸여야 했다.

한때 ‘12일 오후 석방설’이 유력하게 대두됐으나 12일 밤 현지 통신사인 파즈와크아프간뉴스는 탈레반 지휘관의 말을 인용해 “인질 석방이 월요일로 연기됐다”고 보도했다. 애만 태우던 가족들을 또다시 실망시키는 소식이었다.

○…인질 사태의 전환점이 될 만한 소식이 전해진 것은 11일 오후 10시 18분경. 알자지라 방송은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 지도자위원회가 오늘내일 안으로 몸이 아픈 여성 2명을 먼저 석방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아마디는 이어 연합뉴스, AP통신과의 통화에서도 “선의의 표시로 아무런 조건 없이 여성 인질 2명을 먼저 석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보다 2시간 전 AFP통신이 “아무런 발표도 없이 양측 협상 대표가 협상장을 떠났다”고 전한 터라 한국의 가족들은 이날 중 큰 성과가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던 상황이었다.

○…이어 12일 오전 0시 16분경 AFP는 아마디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한국인 인질 2명이 석방됐다”고 전했다.

아마디는 AFP와의 통화에서 “여성 인질들이 아직 인도 장소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운송 수단 사정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마디는 연합뉴스와의 간접 통화에서 “부르카를 입은 여성 인질 2명을 적신월사에 넘겼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탈레반이 인질 2명을 우선 석방한 배경에 여러 해석이 쏟아졌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탈레반이 먼저 양보했는데도 아프간 정부가 양보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 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아사히신문은 “잦은 이동 등 인질 관리 문제로 고심해 온 탈레반이 심하게 아픈 2명을 석방해 골칫거리를 털어 내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AFP는 12일 오전 11시 30분경 협상 진행 상황에 밝은 서방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여성들이 아직 인도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또다시 뭔가 꼬인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연합뉴스는 11시 57분경 아마디 대변인과 간접 통화를 했다며 “탈레반 지도자위원회가 결정을 바꿔 여성 인질 2명을 우선 석방하지 않기로 했다”고 1보를 내보냈다.

연합뉴스는 2보에서 아마디가 “여성들을 적신월사에 넘기려고 가던 도중 지도자위원회가 결정을 바꿨고 인질들은 되돌아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피랍 사태 초기인 지난달 25일 밤 ‘인질 8명 석방’ ‘인질 8명 미군 기지로 인도’ ‘석방 취소’ 등 온갖 설이 난무했던 것처럼 또다시 ‘진실 게임’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가즈니 주 적신월사 관계자가 연합뉴스와의 간접 통화에서 “오늘 오후 여성 인질 2명이 석방될 가능성이 70% 이상”이라고 전해 다시 희망이 엿보였다.

그러나 오후 11시경 분위기는 또다시 반전됐다. 탈레반 지휘관 압둘라 아부 만수르가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은 채 “인질 2명 석방을 연기했다”고 말했다고 파즈와크아프간뉴스는 전했다.

○…이에 앞서 10일 오후 10시 45분 가즈니 시 적신월사 사무실에서 시작된 대면 협상은 이틀 동안 장시간 협상, 휴식, 재협상 등 릴레이식으로 진행됐다. 탈레반은 지도자위원회 소속 고위층인 물라 바시르, 물라 나스룰라 등 2명을 협상 대표로 파견했다. 한국 정부 측에선 4명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적신월사 관계자들이 배석했다.

1차 협상은 10일 밤 12시 무렵 끝났으며 11일 오전 일찍 2차 협상이 시작됐다. 또다시 5시간에 걸친 협상이 진행됐고, 양측은 점심 식사를 겸한 휴식을 취한 뒤 오후 7시경(한국 시간 12일 오전 1시 30분) 협상을 속개했다. 12일에도 양측은 접촉을 유지했으나 대면협상은 열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오전 협상이 끝난 뒤에는 탈레반 측 협상대표들이 취재진에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인질들이 오늘 또는 내일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탈레반 측이 인질 석방의 대가로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계속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협상 결과를 속단하기 어렵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적신월사

‘적십자 대신 붉은 초승달?’

11일 탈레반 무장 세력과 한국 정부 대표의 대면 접촉이 이뤄진 곳은 아프가니스탄 적신월사(赤新月社·Red Crescent)의 가즈니 주 사무실. 입구에는 붉은 초승달 상징(사진)이 크게 그려져 있다.

적신월사는 이슬람권에서 쓰이는 적십자사의 다른 이름이다. 1870년대 러시아-터키 전쟁 당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십자 무늬는 무슬림 병사들에게 거슬린다”는 이유로 그 대신 초승달 무늬를 쓰기 시작했다. 과거 사산왕조 페르시아에서 왕권의 상징이었던 초승달은 이후 이슬람의 권력을 뜻하는 의미로 확대됐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적신월 외에 2005년 12월 적수정(赤水晶·Red Diamond)을 세 번째 엠블럼으로 승인했다. ‘다윗의 붉은 별’ 사용을 고집해 오던 이스라엘이 이 적수정을 받아들여 신청 56년 만에 적십자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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