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유엔 도마에 오른 한국 혼혈 문제

  • 입력 2007년 8월 1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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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순수한 혈통(pure blood)’이라는 개념을 많이 강조하던데, 결국 다른 인종은 ‘불순한 혈통(impure blood)’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을 대상으로 9, 10일 이틀간 진행한 심사에서는 한국 특유의 혈통문화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위원들은 “한국은 단일민족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이에 바탕을 둔 순수한 혈통 개념은 인종 우월성 개념과 비슷하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인종 우월성을 선전하는 단체의 구성을 금지하기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위원도 있었다.

위원들은 ‘혼혈(mixed blood)’이라는 용어와 한국 내 혼혈인에 대한 처우에 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다. ‘혼혈’이라는 용어 자체가 차별적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스타인 한국계 혼혈 하인스 워드 열풍을 계기로 한국에서 혼혈에 대한 차별이 점차 엷어지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혼혈인이 여전히 교육, 결혼, 취직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한국 정부 대표단은 그런 차별을 없애기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강대국 사이에서 문화적 정체성 유지의 필요성 등 한국이 강한 단일민족성을 갖게 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사실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한국이 일제하 식민통치를 견뎌 내고, 나아가 근대화를 이룩하는 데 원동력이 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유엔의 지적처럼 요즘같이 세계화된 사회에선 단일민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한국의 폐쇄성을 부각시키고 국내에서도 사회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6월 말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94만여 명이다. 등록외국인 72만 명과 불법체류자 22만명(법무부 추산)을 합친 숫자다. 게다가 농촌을 중심으로 국제결혼이 크게 늘고 있어 순수 혈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2세들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더욱이 저(低)출산율로 인해 외국 노동력의 유입 없이는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실정 아닌가.

유엔의 지적을 ‘한국 실정을 모르는 국외자들의 잘못된 진단’이라고 무시할 때가 아니다. 국내 혼혈인을 차별하면서 우리가 과연 세계인이 될 수 있겠는가. ‘닫힌 민족주의’로는 한국이 국제사회의 주역이 되기 어렵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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