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도로시 레싱 ‘다섯째 아이’

  • 입력 2007년 5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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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책은 조금 무서운 책입니다. 귀신이나 괴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더 무서울 수 있어요.

왜냐하면 이 책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막연한 공포가 현실이 될 때, 사람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 그 이야기를 한 번 들어 볼까요?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두 남녀가 있었습니다. 목표가 같은 둘은 결혼을 해서 커다란 집을 샀습니다. 여덟 명의 아이를 낳기로 했고,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 여기며 감사했습니다. 네 명의 아이를 낳았고, 행복은 계속됐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동화나 광고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됐겠지요.

그러나 이 가정에도 불행이 싹틉니다. 불행은 부부가 갖게 된 다섯째 아이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무언가 달랐습니다.

과격한 다섯째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끊임없이 발길질을 해대며 움직였지요. 고통이 너무 심해서 아내는 울거나 소리를 질렀습니다.

뱃속의 작은 아이가 그렇게 무서운 힘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실제로 아이는 무서운 존재가 되어 갔습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엄마의 고통은 끝이 났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섯째 아이는 마치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영장류 같았습니다. 냉혹하고, 잔인하고, 인정 없는 아이는 가족을 서서히 공포로 밀어 넣습니다.

가족은 마침내 이 공포 앞에서 삐거덕거리게 되지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빠는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고, 무서운 아이가 죽기를 바라는 엄마는 자기 고민에만 빠지지요. 네 명의 아이들은 괴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집을 떠납니다.

그러나 여섯 명의 가족 중 누구도 이 괴물을 해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족이니까요.

이 책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다른 방향으로 계속해서 엇나갑니다.

먼저 자신의 아이를 누군가가 죽여 주었으면 하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모성애’의 신화를 비웃지요.

가족이 가진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이면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경이롭고 숭고한 것으로 여겨지는 임신도 사실 괴물을 완성시키는 과정이 되었듯이 말이지요.

결국 가족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 구성원에 의해서 붕괴되고 맙니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 간의 허술한 연대도 드러나지요. ‘인간이 생각하는 최대 가치를 붕괴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라고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면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결론을 발견해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의 가족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가족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이상적인 가족상, 즉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라는 식의 동화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가족의 안팎에서 일어난 문제들을 올바르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랑이라는 신화를 넘어서서 말입니다.

자, 그럼 여러분도 다섯째 아이를 만나러 떠나 보시기 바랍니다.

한선영 학림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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