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보다 공무원이 더 무섭더라”

  • 입력 2007년 5월 1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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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하라며 아예 설명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던데요.”

“내가 알기로는 그런 규정이 없는데….”

10일 오전 7시 30분경 서울 중구 남대문로 SK 남산빌딩 20층.

SK그룹이 운영하는 ‘상생아카데미’ 강의실에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50여 명이 모여들었다.

모두 SK그룹 협력업체 대표들이었다.》

SK그룹은 최근 중소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위해 협력업체 CEO들에게 정기적으로 무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2개월에 1차례씩 국내외 경영 트렌드를 선정하고 사내외 전문가를 초청해 정기적으로 특강을 할 예정이다.

이날 첫 번째로 마련한 강의 주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중소기업의 대응전략’. 중소기업청의 A 본부장이 강사로 초청돼 한미 FTA의 내용과 전망에 대해 1시간 가까이 강의했다.

그는 한미 FTA로 인한 중소기업의 경영환경 변화를 설명하면서 “한미 FTA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사업 전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 A 본부장이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궁금했던 점은 무엇이든 물어봐도 좋다”고 하자 한 중소기업 대표가 손을 들었다.

광고 모델 에이전시 겸 이벤트 업체를 운영한다는 이 CEO는 “결혼 준비와 이벤트를 대행하는 ‘웨딩 컨설팅’까지 해보려고 해당 관청을 찾았더니 담당 공무원이 ‘직업소개소(모델 에이전시)와 중매업(웨딩 컨설팅)은 병행할 수 없다’며 신고조차 받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웨딩 컨설팅은 결혼을 알선하는 업체가 아니라고 했더니 해당 공무원이 ‘나는 영어 못하니까 그런 설명 들을 필요도 없고 다른 데서 허가를 받든지 알아서 하라’고 핀잔을 주더라”며 “사업 전환 지원보다 공무원 서비스 교육을 먼저 할 생각은 없느냐”고 ‘뼈 있는’ 질문을 던졌다.

다른 중소기업 CEO들도 한번쯤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듯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A 본부장은 다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경험하신 일이 저희 업무는 아니지만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해당 공무원의 태도에 대해 사과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2가지 업종의 사업을 동시에 못한다는 규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담당자가 잘 몰라서 그렇게 한 모양인데, 자신이 없으면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공무원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그런 일이 있으면 공무원의 상급자에게 알아보거나 주변에 친구가 있으면 간접적으로 알아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한 참석자는 혼잣말로 “담당 공무원이 거절한 사안을 배짱 좋게 상급자에게 이야기하는 중소기업 사장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소기업 경영자에게는 한미 FTA보다 더 높은 ‘공무원의 벽’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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