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더위 ‘바람둥이’가 확~ 날리겠습니다

  • 입력 2007년 5월 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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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아무 과일이나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제철 과일’이 슬그머니 빛을 잃더니 여름처럼 더운 봄이 잦아지면서 에어컨의 제철도 변하는 듯하다. 심지어 디자인이 강조되면서 ‘에어컨은 가전제품이 아니라 가구’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1년 365일 에어컨 바람을 끼고 사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대표적 인물 두 사람을 만나 봤다.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이라고나 할까.》

■에어컨과 18년 동고동락… 삼성전자 김태덕 수석연구원

삼성전자의 유명한 ‘바람둥이’를 만나러 경기 수원시 영통구 매탄3동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았다.

생활가전총괄사업부의 김태덕(43·사진) 수석연구원이 그 주인공.

서글서글하고 편안한 인상의 김 수석연구원은 일반적 의미의 바람둥이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는 1989년 삼성전자 입사 후 에어컨 한 우물만 판 ‘바람 사나이’.

그의 주 근무처인 주택환경실험실을 따라 들어갔다. 마치 열대지방에 온 것처럼 숨이 턱 막히게 더웠다. 에어컨 성능 테스트를 하기 위해 늘 섭씨 35도 이상을 유지한다고 했다. 야구장의 조명탑처럼 생긴 인공태양을 이용해 실내 온도를 50∼60도까지 올리기도 한다.

김 수석연구원은 “이 실험실에서 연구하다 보면 계절 감각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근무자 대부분이 실험실 안팎의 심한 온도 차 때문에 감기에 자주 걸린다”고 말했다.

실험실 내 12평 크기의 방에는 길이 3m짜리 금속 줄 80개가 좌우 앞뒤 60cm 간격을 유지한 채 천장에서 바닥으로 늘어뜨려져 있었다. 난해한 현대 예술작품처럼….

구리와 니켈을 엮어 만든 이 줄 각각에는 50cm마다 이른바 ‘타점’이 있었다. 이 타점은 그 지점의 온도를 측정한다. 김 수석연구원은 “에어컨을 틀었을 때 방이나 거실이 얼마나 빨리 골고루 시원해지느냐를 측정하기 위한 필수적 장치”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2007년형 하우젠 에어컨이 자랑하는 ‘서라운드 입체 바람’은 이 장치를 이용한 수많은 실험을 통해 완성됐다. 냉방의 사각지대를 없애 주는 이중 바람 날개의 성능 테스트도 마찬가지.

고진감래(苦盡甘來)인지 에어컨 예약 판매는 올해 고공행진을 벌였다. 김 수석연구원은 “무더운 실험실에서 고생하며 개발한 제품을 고객이 사랑해 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요즘 에어컨은 ‘가전제품이 아니라 가구’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시각적 아름다움이 강조되고 있다. 에어컨 정면 상단에 있던 바람 날개의 위치가 측면으로 옮겨가고 에어컨의 바닥 면적은 좁아지면서 키는 더 커지는 추세도 이 때문.

김 수석연구원은 “에너지 절전율, 디자인, 그리고 바람의 트렌드가 에어컨 경쟁의 3대 요소”라고 말했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에어컨 바람의 특징은 ‘있는 듯 없는 듯’이라고 한다. 그는 “소비자 조사를 해 보면 에어컨 바람이 초속 1m만 넘어도 불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부는 듯 마는 듯 하는 바람이 최적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바람의 사나이’가 내년에 내놓을 새로운 바람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에어컨 혐오론자서 예찬론자로… LG전자 김희현 과장

전자 에어컨상품기획그룹의 김희현(33·여·사진) 과장은 2002년부터 에어컨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이나 요구를 신제품 기획에 반영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전기료 부담을 크게 개선한 2002년의 트윈파워시스템(TPS), 실외기 1대에 실내기 2대를 설치하는 2003년의 투인원(2in1) 에어컨, 기존 에어컨보다 바닥 면적을 28% 축소한 2004년의 디럭스 슬림 모델, 필터 청소의 불편함을 해소한 2007년의 로봇 청소 에어컨 등등. 모두 그의 손길과 입김이 닿은 제품이나 기술이다.

연간 60∼100명에 이르는 고객이나 매장 직원을 직접 만나 에어컨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 과장이 예전에는 에어컨 혐오론자였다고 한다.

“원래 더위를 거의 타지 않는 체질이어서 에어컨의 강한 바람이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2003년 첫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에어컨의 순기능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됐어요.”

몸이 무거워지면서 더위를 느끼게 됐고 비로소 에어컨이 ‘효과적 여름’을 보내게 해 준다는 것을 체감하게 됐다는 것. 그때부터 김 과장은 에어컨 예찬론자가 됐다고 한다. 그는 “추위는 극복이 되지만 더위는 참 극복하기 어렵다. 에어컨은 무더운 여름에도 쾌적한 수면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하루를 활기차게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고객이 원하는 쾌적한 바람 온도와 강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종종 ‘바람 맞는 여자’가 되기도 한다. 섭씨 18∼30도까지 0.5도씩 온도를 바꾸고 바람 세기도 1∼5단까지 변경하며 총 125가지의 바람을 맞아볼 때가 있기 때문.

김 과장은 지금 임신 7개월째. 첫째 아이가 그를 에어컨의 세계에 눈뜨게 했다는데 둘째는 그에게 에어컨의 어떤 신세계를 열어 줄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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