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상아탑의 텅빈 졸업식

  • 입력 2006년 2월 28일 03시 08분


코멘트
1986년 2월 26일 서울대 졸업식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박봉식 총장이 졸업식사를 읽으려는 순간 2000여 명의 학부 졸업생들이 “우” 하는 야유와 함께 ‘아침이슬’을 부르면서 일제히 퇴장한 것이다. 이어 손제석 문교부 장관이 치사를 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대학원 졸업생 1000여 명이 자리를 떠 식장이 어수선해졌다.

다음 해에도 졸업생들은 박 총장에게 등을 돌리고 앉은 채 노래를 불렀고 손 장관을 향해 “물러가라”고 야유하며 자리를 떴다.

이는 5공화국 군사정권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고, 특히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교수들은 “제자들로부터 버림받은 심정”이라며 참담해 했다.

이후 문교부 장관은 초청되지 않았고 교내 행사로만 치러졌다. 돌아앉기 자리뜨기 등 파행 졸업식은 대학가에 유행이 됐고 졸업식은 점차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서울대 졸업식에는 대통령이 참가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 중에도 참석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부터 줄곧 참석했으나 대학생들의 유신반대 시위를 의식해 1975년부터 문교부 장관이 대신 참석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20년 만에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했다. 그는 “시대상황과 양심이 대학생들을 거리로 내몰았지만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오늘의 문민시대를 열었다”며 “이제 투쟁이 영웅이 되던 시대는 지났고 잃어버린 시간을 메우기 위해 연구실과 도서관에 불을 밝혀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권교체 때문인지 불상사는 없었고 박수까지 받았지만 졸업생은 절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졸업식은 퇴색해 있었다.

암울한 시대는 지났어도 졸업식은 갈수록 삭막해지는 것 같다. 요즘 대학마다 졸업식이 한창이지만 행사장은 텅 비어 있고, 그나마 학교에 나온 졸업생들은 가족 친구들과 사진 찍기에 바쁘다.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졸업생들은 가슴 펴고 나타나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24일 서울대 졸업식도 썰렁한 가운데 치러졌다. 특히 황우석 교수 파동으로 주목을 받았던 수의학과의 경우 졸업생 45명 중 3명만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학부제 도입으로 학과 소속감이나 사제 관계가 옅어져 사은회는 사라진 지 오래고, 오히려 교수들이 환송회를 마련해도 학생들이 없어 민망할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강하다는 미국의 대학 졸업식은 지루할 정도로 진지하다. 학생들은 3시간 이상 걸리는 졸업식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총장은 졸업생 전원에게 일일이 졸업장을 주며 축하한다. 그러면서도 이벤트가 다채로워 파티처럼 흥겹고, 친구들과 다정하게 포옹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아름답다. 사각모를 하늘 높이 집어던지는 것은 힘든 과정을 이겨 내고 목표를 이뤘다는 뿌듯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과연 한국 대학생들은 얼마나 힘들게 졸업할까. 졸업식이 시들해진 것은 상아탑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은 탓도 있지만 대충 공부해도 졸업할 수 있는 대학 풍토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졸업 또는 졸업식을 뜻하는 영어 ‘commen-cement’와 ‘graduation’에는 끝이 아니라 새 출발과 점진적으로 성장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대학의 ‘마지막 수업’인 졸업식이 새 출발의 의미를 되새기는 축제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인철 교육생활부 차장 inchu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