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울대 논술문제에 청와대가 왜 끼어드나

  • 입력 2005년 11월 22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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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청와대가 교육인적자원부를 통해 2008학년도 서울대 논술시험 예시문항이 본고사가 될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7월 서울대 논술에 대해 “논술시험을 본고사처럼 보겠다는 게 가장 나쁜 뉴스”라며 문제 제기를 한 바 있다. 청와대의 서울대 입시 간여 논란이 다시 불거진 셈이다.

청와대는 정 총장 발언을 부인했지만 정 총장은 “예시문항 중 이공계의 일부 문항이 문제가 됐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또한 교육부가 청와대에 서울대의 논술 예시문항 발표를 보고한 사실이 확인됐다. 서울대가 교육부에 예시문항을 제출한 뒤 7일로 예정됐던 예시문항 발표를 28일로 연기한 것도 석연치 않다. 분명한 것은 교육부와 청와대 간에 협의가 오갔다는 점이다.

정 총장은 “논술문제를 정부부처에 보고해야 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비판의 톤을 높였다. 노 대통령의 서울대 논술시험 발언이 있고 나서 교육부가 부랴부랴 ‘논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했던 일은 한 편의 코미디를 연상시킨다. 당시 서울대의 새 논술시험은 ‘통합교과형’이라는 방향만 정해졌을 뿐 구체적인 출제 유형도 나와 있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전제국가에서나 가능한 가이드라인을 무기로 내세워 이중삼중으로 입시를 통제하고 대학자율을 훼손하려 드니 이게 정부가 할 일인가.

교육부는 이번 논술 예시문항과 관련해 ‘본고사가 되지 않게 하라’고 서울대에 요청했다고 한다. 서울대가 당장 예시문항 발표를 미룬 것을 보면 정부의 말 한마디가 대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감케 한다. 물론 서울대 입시가 공교육에 미칠 영향은 출제과정에서 고려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학 스스로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어떤 문제는 되고 어떤 문제는 안 된다고 일일이 판정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통합교과형 논술은 대학들이 입시의 새 대안으로 내놓은 시험이다. 서울대는 정부 눈치를 보지 말고 스스로 대학 자율을 지키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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