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관희]北인권탄압 묵인은 시대착오

  • 입력 2005년 11월 2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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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총회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지난 3년간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유럽연합(EU) 25개국이 총회 차원에서의 결의안 채택을 시도한 끝에 이뤄진 결과다. 북한에 대한 인권결의안은 유엔 인권위에서 2003년부터 3년 연속 채택됐으나 유엔 총회에서 채택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의 인권 유린 실상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과 우려가 증대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인권의 소중함은 유엔의 정신과 일치한다. 인간은 누구나 날 때부터 ‘천부, 불가양도’의 자유와 권리를 향유하며 어떠한 국가나 조직도 이를 억압할 수 없다고 유엔은 선언하고 있다. 아울러 어느 국가가 자국민이라는 이유로 자의적인 인권 탄압을 자행한다면, 유엔은 ‘인도주의적 개입’의 명분과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03∼2005년 유엔 인권위 결의에 이어 이번 유엔 총회의 결의에서마저 기권함으로써 김정일 독재정권의 인권 탄압을 사실상 묵인 외면하는 꼴이 됐다. 기권의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의 보편적 도덕률을 외면하는 셈이 돼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동안 미국과 EU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 왔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어느 미국인은 “히틀러의 독일을 방문한 유대인의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LA타임스가 보도한 내용이다.

미국도 북한 인권 문제에 예전보다 강경하게 나서는 모습이다. 작년 상하 양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한 ‘북한인권법’과 올해 3월 상정된 ‘민주주의 증진법’ 등에 근거해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북한 인권 청문회를 개최했다. 여기서는 탈북자 실태, 대북 방송 활성화 문제, 북한인권법의 구체적 실행 문제 등이 집중 논의됐다. 미 국무부도 8일 2001년 이후 5번째로 북한을 ‘종교자유 침해 우려국’으로 지정해 발표했다. CNN NBC 등 미국의 주요 방송들은 이례적으로 황금시간대에 1∼2시간에 걸쳐 ‘공개처형 동영상’ 등 북한 인권 실태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북한 인권 상황이 워낙 참혹하다 보니 그 실태를 들은 외국인들이 눈물을 펑펑 쏟는다는 전언이다. 무덤덤하기만 한 국내 반응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특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5차 6자회담 1단계 회의가 성과 없이 종료됨에 따라 미국의 북한 인권 문제 제기가 본격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무부가 북한 주민에게 자유세계의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찾을 것임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등 6자회담 기간 중 신중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북한이 핵과 인권 문제에 하등의 개선의지를 보이지 않자 이제 인내하기 어렵다는 의사표명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북한 인권 문제는 압박한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특히 북핵 해결이라는 우선과제를 놓아둔 상황에서 섣부른 대북 압박은 남북관계 경색과 북-미관계 악화라는 부작용만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 눈치 보기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가 인권 문제를 제기할 경우 남북관계는 경색될 것이다. 하지만 경색 상태가 오래갈 수는 없다. 현재 북한의 처지가 워낙 다급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주장은 시대착오적이어서 국제사회에서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 한국 국민 모두로 하여금 국제적 눈총과 수모를 받게 할 뿐이다. 국제사회와 인류의 보편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은 구구한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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