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100·끝>고전시가선집-유리왕 등

  • 입력 2005년 7월 29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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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훨 나는 꾀꼬리는/암컷 수컷 정다운데/나의 외로움을 생각함이여/누구와 함께 갈거나.’

고구려의 유리왕이 불렀다고 전하는 ‘황조가’이다. 문면에 나타난 현실은 짝을 잃은 화자의 고독한 처지이고, 이상은 꾀꼬리처럼 정다운 부부관계이다. 이 노래에서의 현실과 이상은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영원한 갈등으로 나타난다. 이상적인 삶의 추구가 강렬할수록 현실에서 경험하고 있는 결손의 상처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노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 노래의 앞부분은 자연의 정경을, 뒷부분은 화자 자신의 내면을 노래하고 있다.

따라서 이 노래가 들려주는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는 곧 자연과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괴리인 것이다.

‘강강술래’나 ‘쾌지나 칭칭 나네’ 같은 노래도 이러한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다. 전자는 호남지방에서, 후자는 영남지방에서 향유하고 있는 민요이다. 이 둘은 집단예술의 형태로 보존되고 있는 점, 선후창이라는 가창 방식과 상당량의 노랫말까지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공을 초월한 우리 선조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하늘에는 별도 총총/쾌지나 칭칭 나네/강변에는 잔돌도 많다/쾌지나 칭칭 나네/솔밭에는 옹이도 많다/쾌지나 칭칭 나네.’

이 노래에 등장하는 하늘, 별, 강, 돌, 소나무는 자연물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자연이다. 인간의 손에 의해 가공되지 않은 그 순수 자연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야말로 자연은 그 어느 것 하나 풍성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많다’는 표현이 인간사에 결부될 때 그 의미는 180도 달라진다.

예컨대 ‘우리네 살림살이 수심도 많다’와 같은 구절은 풍성한 자연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결핍과 부조화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천 년에 걸쳐 향유되었던 우리의 옛 노래를 어찌 이와 같은 한 가지 잣대로만 말할 수 있으랴. 꿈속에서도 시를 짓고,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그 시를 잊어버릴세라 종이에 옮겨 적었다는 수많은 문인. 그들이 꿈꾸었던 세계와 그들이 소요했던 정신세계를 어찌 한마디로 재단할 수 있겠는가.

옛 노래의 참맛을 이해하려면 오늘 우리가 소중한 것이라고 꿈꾸고 있는 그 모든 것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 세계인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새로 제작하는 1만 원권 지폐에 ‘용비어천가’의 제2장을 넣기로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 또한 조선 왕조의 꿈과 이상을 담았던 노래가 오늘 우리의 꿈과 이상을 표현하는 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제안이 아니겠는가.

이 노래는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을 통해 대자연의 섭리를 노래하고 있다. 또 꽃 좋고 열매 많음은 자손의 번성과 풍요를, 바다로 나아감은 세계를 바라보며 우리 민족이 더욱 융성하기를 바라는 것인데 이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바람 아니겠는가.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일 새/꽃 좋고 열매도 많으리니/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그치지 아니할 새/내가 되어 바다로 가느니.’

권두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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