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전주 세계소리축제 준비바쁜 안숙선 국립창극단 감독

  • 입력 2005년 7월 9일 03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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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와 창극의 현대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안숙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그는 “소재를 현대화하는 것 외에도 탈춤 등 전통연희와의 접목, 소극장 창극 개발 등 다양한 형식상의 실험이 있을 때 전통 소리가 젊은 세대 속으로 파고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판소리와 창극의 현대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안숙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그는 “소재를 현대화하는 것 외에도 탈춤 등 전통연희와의 접목, 소극장 창극 개발 등 다양한 형식상의 실험이 있을 때 전통 소리가 젊은 세대 속으로 파고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햇살이 하얗게 부서지는 7월 초 서울의 남산 기슭은 별세상 같았다. 장충동 국립극장 한편에 자리 잡은 국립창극단 단장실. 안숙선(安淑善·56) 예술감독은 다소 초췌해 보였다.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문화축제에서 공연될 창극 ‘제비’를 손보느라 정신이 없는 데다 지난해부터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주 세계소리축제 회의 때문에 전주를 왔다 갔다 했더니 ‘덜컥’ 몸살이 나버렸다고 했다.

“소리꾼으로는 아쉬움이 많은 생활이죠. 하루 이틀만 소리공부를 안 해도 제대로 된 소리가 안 나는 것인데….”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그런데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요즘 젊은 세대, 그냥 놓아두면 점점 우리 소리와 멀어집니다. 판소리가 만들어지던 시대와는 입는 옷도, 먹는 음식도 달라졌기 때문이죠.”

1980년대 중반부터 ‘심청가’ ‘춘향가’ 등 국립창극단의 여러 창극에서 주연을 도맡으며 ‘실력과 대중성을 함께 갖춘 젊은 소리꾼’으로 갈채를 받아 온 명창 안숙선. 그는 요즘 세상을 작창(作唱)하고 있다.

작창이란 판소리나 창극 등 전통 성악곡의 소리틀을 만드는 작업. 양악으로 따지면 오페라나 가곡의 작곡에 해당한다. 6월 13일에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취임을 축하하는 판소리 ‘시편 23편’을 선보였다. 이에 앞서 6월 7일에는 독도문화연대 창립기념공연 ‘독도! 문화로 지킨다’에서 창작 단가 ‘독도충렬가’와 판소리 ‘안중근 열사가’를 열창했다. 독일에서 공연할 ‘제비’도 그가 작창을 맡아 2004년 초연해 절찬을 받은 창작 창극이다.

“예술은 시대와 연관을 맺고 있어야 사람들과 함께 숨을 쉬어 나갈 수 있지요. TV를 켜도, 영화관에 가도 재미나는 이야기가 쏟아지는 시대에 교과서에서 익혔던 춘향과 심청 이야기만 들려줄 수는 없어요.”

그는 “그러나 우리 소리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지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의 가락을 깊이 꿰고 있지 않으면 새로운 소재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지요.”

신작 판소리를 작창하는 판소리 현대화 작업이 그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2003년 타계한 박동진(朴東鎭) 명창은 1970년대 초반 ‘예수전’ ‘충무공 이순신전’ 등을 발표해 이 분야의 선각자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안 명창의 작업은 혼자 소리하는 판소리와 여럿이 무대를 꾸미는 창극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소재도 한층 다양화됐다는 점에서 전통소리 현대화의 21세기형 새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주 세계소리축제(9월 27일∼10월 4일)도 올해 ‘집중기획 판소리’를 중요 테마로 정해 새롭고 다양한 판소리와 창극의 모델을 소개한다. ‘국악 뮤지컬적 어린이 창극’을 표방한 남원시립국악단의 ‘달래 먹고 달달, 찔레 먹고 찔찔’을 비롯해 젊은 소리그룹 ‘타루’의 ‘발칙한 상상 시리즈’, 탈춤과 꽹과리 등이 어우러지는 2인 실내 판소리극 ‘호질’ 등이 저마다의 양식 실험을 펼친다. 안 명창은 고은 시인이 대본을 쓴 창작 창극 ‘초혼’의 작창을 맡았다.

“지난해 상징적으로 자문 역이나 해달라기에 덜컥 조직위원장을 맡았죠. 그런데 자꾸 일을 맡겨 버리네요. (웃음) 그런데 축제를 한 해 치러보고 찬찬히 진행 과정을 보니까, 이것이 기회다 싶어요. 무엇이 기회냐 하면, 전국의 소리꾼이 한데 모여 춤추고 노래하고 머리를 맞대고 국악계의 미래를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그동안 없다시피 했어요. 전주 세계소리축제가 이 구실을 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특히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된 판소리를 어떻게 세계화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지혜를 구해야 하겠지요.”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춘향가’ 유럽 순회공연을 하면서 관객들의 열띤 반응을 보고 판소리가 가진 세계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국악 하는 사람들만으로는 전략도, 예산도 미흡할 수밖에 없지요. 문화관광부 등 정부에서 판소리의 세계 진출에 대한 체계적인 전략을 세워 주어야 해요. 방향이 정해지면 모든 힘을 보탤 생각을 소리꾼이면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국악인들이 그동안 국민에게서 넘치는 사랑을 받아 왔는데, 힘을 합쳐서 좋은 결과를 돌려드려야죠.”

그는 자신이 자문 역을 맡아 온 동아국악콩쿠르에 최근 운영기금 300만 원을 희사한 것도 그런 사랑에 대한 ‘감사’의 뜻이라고 말했다. “소리꾼이 물고기라면 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후배들을 후원하는 일도 앞으로는 국악인들이 앞장섰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것 하나하나가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일이니까요.”

그동안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을 내다보는 중견 국악인의 골똘한 눈길 속에 국악의 미래가 한층 밝게 내다보였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안숙선 명창은:

△1949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

△1959년 주광덕 명창 문하로 창 입문

△1975년 김소희 명창에게 흥부가 춘향가 심청가 등 배우기 시작

△1979년 국립창극단 입단

△1986년 남원 전국명창경연대회 대통령상

△1986∼90년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 공연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1997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199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임교수

△1998년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 받음

△2001년 창작 창극 ‘논개’ 작창

△2002년 창작 창극 ‘우루왕’ 중남미·이스라엘 순회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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