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총알을 총으로 맞힌 셈” 환호성

  • 입력 2005년 7월 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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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동안의 준비, 과학자 250여 명의 밤낮을 잊은 노력, 3억3300만 달러(약 3300억 원)의 천문학적인 액수.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역사적인 혜성충돌 실험 ‘딥 임팩트 프로젝트’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듯 우주 공간에서 초대형 불꽃놀이를 펼치며 성공을 거두었다.

▽충돌 순간=올해 1월 미 플로리다 주 케이프커내버럴에서 발사된 우주선 ‘딥 임팩트’는 긴 여정 끝에 3일 오후 3시 7분, 높이와 지름이 각각 1m이고 무게가 370kg에 달하는 원기둥 모양의 충돌체(Impactor)를 발사했다. 충돌체는 약 24시간에 걸쳐 시속 3만7000km의 속도로 80만 km를 날아갔다. 충돌 2시간 전부터는 자체항법장치로 스스로 궤도를 수정해 가며 목표물로 돌진해 마침내 혜성 ‘템펠1’과 충돌했다. 지구로부터 약 1억3400만 km 떨어진 우주공간에서 사상 초유의 인위적 우주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딥 임팩트호, 혜성충돌 실황사진 보기
※ 실황보기 속 사진을 클릭하신 후 사진 밑 "Play impact movie"를 누르시면 딥임팩트·템펠1 충돌 장면 '우주 불꽃놀이'의 생생한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Source: NASA)

충돌과 함께 템펠1 아랫부분이 갑자기 환해져 9.3등급이던 밝기가 순간 두 배 정도 밝아졌고 다시 30분 후에는 5배나 밝아졌다. 충돌로 혜성 표면에서 얼음과 먼지, 잔해가 뿜어져 나오면서 혜성 주변은 뿌옇게 변했다. 가스가 걷히면서 혜성 표면에는 충돌의 여파인 축구장 크기의 커다란 구덩이가 나타났다.

충돌체는 충돌 직전까지 혜성의 사진을 찍어 모선으로 전송했으며 모선 딥 임팩트는 혜성으로부터 500km 떨어진 지점에서 충돌 자료를 지구로 보냈다. 하지만 마이클 아헌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수석연구원은 “현재까지 받은 사진은 아직 10%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자료를 모두 내려받는 데만 며칠이 걸리며, 과학자들이 이를 해독하는 데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전망이다.

허블 우주망원경, 유럽연합(EU)의 로제타 우주선 등에서도 이 장면을 촬영했으며 지상에서는 60개 천문관측소에서 100여 명의 천문학자들이 역사적인 장면을 기록에 남겼다.

▽인류 개가의 날=충돌 직전까지 초조하게 화면을 지켜보던 NASA의 관제담당자들은 첫 충돌 사진이 전송되자 “굉장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다. 특히 미국인들은 독립기념일인 4일에 인류 역사상 한 페이지를 장식할 쾌거를 미국인의 손으로 이뤄냈다는 점에서 무한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찰스 엘라치 JPL 소장은 “우주 탐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며 “이제 우주에 대한 완전하고도 새로운 통찰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간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던 1만여 명의 사람들도 “한 편의 공상과학(SF)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며 환호성을 올렸다. TV 실황 중계로 지켜보던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과학사적 의미=NASA는 템펠1의 충돌 잔해에서 태양계의 생성과 진화의 실마리를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태양계의 타임캡슐’로 불리는 혜성은 내부에 태양계 생성 당시의 물질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구에 떨어지면서 물과 유기물 복합체를 만들어 내 생명의 기원을 제공한 존재로 추정돼왔다.

박상영(천문우주학) 연세대 교수는 4일 “이번 실험으로 혜성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목성형 행성들의 기원도 규명해 낼 수 있어 궁극적으로는 태양계의 근원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날아가는 총알을 총으로 쏴서 정확히 맞힌 것”에 비유되는 이번 성과로 우주공학적 계산의 정확성이 진일보했음을 입증한 것도 큰 성과로 분석된다. 이 실험의 성공이 향후 활발한 우주개척 시대를 열어갈 기초를 제공했다는 것.

혜성과 소행성에는 백금이나 황금 등의 다양한 광물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우주발 골드러시’가 가능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문홍규 박사는 “우주개발 진전에 따라 경제성이 좋아진다면 우주에서 가져온 백금이나 황금을 볼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며 “얼음이나 가스로 이뤄진 혜성에서 물을 얻을 수 있다면 혜성이 우주개발의 전초기지로 기능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딥 임팩트 실제상황 오면

길이 12km, 무게 5000억 t의 혜성이 지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지구는 아연 초비상에 돌입한다. 충돌예상일은 8월 16일. 이 혜성을 파괴하거나 궤도를 변경하는 것만이 인류와 지구가 살아남는 유일한 선택이다. 그 운명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우주선 ‘메시아호’가 지구를 뒤로하고 우주로 발사된다.

1998년 개봉된 영화 ‘딥 임팩트’의 한 장면이다. 만약 영화와 같은 상황이 재현된다면 과연 인류는 ‘지구 최후의 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혜성과의 충돌실험에 성공함으로써 앞으로 지구와 혜성 또는 소행성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한 궤도 변경이 가능할 것인지가 이제 현실의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천문학자들은 향후 30년 내에 지구와 혜성 또는 소행성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지구상의 1, 2개 국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정도의 대재앙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사실 이번의 충돌 자체는 혜성의 궤도를 바꿀 만큼 강한 것은 아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문홍규 박사는 “모기가 보잉 767 항공기에 부딪힌 정도의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계산대로 정확하게 목표에 명중했다는 점은 앞으로도 비약적으로 발전할 과학기술이 혜성에 충격을 가해 궤도를 바꿀 수도 있게 되는 날이 온다는 기대를 더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은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충남대 이유(천문우주과학) 교수는 “혜성의 궤도를 갑자기 바꾸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의 김병수(우주공학) 박사도 “혜성에 착륙하려면 혜성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우주선이 필요한데 아직은 무리”라고 말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할 뿐이지 해결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연세대 박상영(천문우주학) 교수는 “우주선에 핵폭탄을 싣고 직접 천체에 부딪히는 방법, 천체에 커다란 거울을 달아 태양에서 오는 빛을 반사시켜 그 반발력으로 궤도를 바꾸는 방법, 소행성이나 혜성에 레이저를 쏴 천체의 궤도를 바꾸는 방법 등이 논의되고 있다”며 “영화 딥 임팩트의 꿈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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