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태현]反美와 用美 사이

  • 입력 2005년 5월 25일 03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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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0년 전인 1985년 5월 23일. 70여 명의 대학생이 서울 중구 을지로 입구에 위치한 미국문화원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20년이 지난 지금에 있어 이 사건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신화(神話)의 타파였다.

광복 후 40년 동안 우리 역사에서 미국의 존재는 압도적이었다. 군정 3년과 전쟁 3년이 그 존재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그처럼 극적이지 않더라도 미국은 막대한 경제원조와 상수가 된 주한미군으로 그 존재를 과시해 왔다. 그러면서 미국은 하나의 신화적 존재가 됐다. 그 실질적 존재 외에도 일상의 담론에서 미국은 넘을 수 없고 넘볼 수 없는 신화가 됐다. 실체가 있되 실체가 없는 것 같은 신비한 존재, 느낄 수 없어도 우리의 일상 저 너머에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신(神)과 같은 존재가 됐던 것이다.

1980년 광주의 참변에 대해 미국의 책임을 묻는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은 바로 그와 같은 신화를 깨뜨렸다. 두 가지 측면에서다. 미국은 더 이상 신비한 존재가 아니라 현실 속에 실재하는 손에 잡히는 존재가 됐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지선(至善)의 존재도 아니었다.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담보하기는커녕 정치적 부담을 지우는 존재가 됐다.

민주화 이후 그와 같은 추세는 가속화됐다. 미국의 압도적 존재는 고양되기 시작한 국민적 자긍심과 자주 부닥쳤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미국 방송이 한국을 소개한 방식에서부터 김동성 선수의 ‘빼앗긴’ 금메달까지 미국은 ‘밉살스러운’ 존재로 자리 잡았다. 반미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의 담론 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급기야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효순, 미선 양의 사망과 사고책임이 있는 미군 병사에 대한 무죄평결은 대규모 반미시위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때마침 맞물린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쳤고 반미는 정치적 차원의 담론이 됐다. ‘친미파’와 ‘자주파’ 사이의 다툼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이 경질됐고 중국이냐 미국이냐가 여당 의원들 사이에 화두가 되기도 했다. 더 나아가 대통령까지 나서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람들’을 거론했다.

그와 같은 정치적 담론 속에서 미국은 또다시 신화가 되고 있다. 구체적 존재로서의 미국은 사라지고 막연한 반미, 친미의 대상으로서의 미국만 남았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은 여느 때처럼 뒷북을 친다.

최근 여론조사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정서가 반미에서 이제 용미(用美)로 돌아서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용미론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우리 국익을 위해 미국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요는 용미론이 등장한 배경에 일반국민들의 의식의 변화 혹은 그 의식 속 미국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친미-반미의 담론 속에 신화화된 미국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존재로서 미국의 실체가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담론 속 신화와 무관하게 미국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다. 북미 대륙에 방대하게 자리한 영토와 3억 명의 인구, 그리고 그들을 통치하는 정부가 미국을 구성한다. 한반도 남쪽 영토와 4800만 명의 인구, 그리고 그 정부로 구성된 한국과 마찬가지다.

한미관계에는 정부 간에 거론되는 외교관계, 동맹관계와 같은 정치·전략적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대상으로서 미국과 맺는 정서적 측면만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3억 명의 미국 사람들과 4800만 명의 한국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면서 맺는 실질적 측면이다. 용미란 곧 실질적 측면에 대한 주목이다.

정치권은 신화 속의 미국을 대상으로 친미-반미를 논할 게 아니라 실질적 존재로서 미국을 인식하고 정치적 담론과 정책적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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