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두아]北인권, 침묵은 이제 안통한다

  • 입력 2005년 4월 26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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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부터 2주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제61차 인권위원회가 열렸다. 필자는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의 북한인권위원회 간사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보름간의 체재를 통해 돌아가는 상황을 모두 파악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이번 회의와 관련하여 국민께 꼭 보고해야 할 사실이 있다.

현지에서 접했던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점이다. 북한은 물론 한국에 대한 비우호적 분위기가 유엔 주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3월 29일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보고에 이어 31일에는 인권 비정부기구(NGO)인 주빌리 캠페인이라는 단체가 북한인권 세미나를 열었다. 여기서 탈북자들의 증언에 이어 공개처형 장면을 녹화한 비디오가 상영됐는데 주최 측은 북한의 조작설을 차단하기 위해 동영상의 촬영날짜와 장소를 ‘3월 1, 2일 함경북도 회령’이라고 못 박아 공표했다.

북한대표부는 이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비디오에 담긴 영상이 ‘사실’임을 사실상 시인한 결과가 됐다. 비디오를 본 서방 측의 한 참석자는 “왜 한국 정부가 이를 중단시키기 위해 군사적 행동을 하지 않느냐”고 물을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영국의 한 인권 변호사는 “북한이 지난 수십 년간 저지른 대량 학살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 인권문제에 관한 한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들어 소극적 태도를 취해 왔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 같은 장소에서 북한과 한목소리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저지른 인권유린을 강도 높게 비판한 사실과 비교하면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과거의 심각한 인권유린을 외면한다며 일본을 비난하면서 현재 북한에서 자행되는 심각한 인권유린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러한 이중적 인권의식에 대해 국제사회는 결코 고운 눈으로 봐주지 않았다.

일부 국내 시민단체도 문제를 키우고 있었다. 결의안 초안 3이 초안 4로 바뀌는 과정에서 1.(b) 항목에 있던 ‘감옥이나 수용소에서의 영아살해’ 구절이 삭제됐다. ‘시변’이 이의를 제기하자 문서 작성을 담당하는 유럽연합 측은 “많은 탈북자가 증언을 한 것은 사실이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내놓으라’는 한 대한민국 NGO의 거센 항의 때문에 이 구절을 삭제했다”고 해명했다.

한 폴란드인 참석자는 특정 한국 시민단체의 북한 비호 행동을 보고 “독일 젊은이들이 부모 세대를 향해 왜 나치 만행에 침묵했느냐고 질문을 던지듯이 한국의 후세들도 북한 인권문제에 침묵한 윗세대를 공박할 것”이라면서 “몰라서 그랬다는 건 비겁한 변명”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인권위원회 본회의에서 두 번이나 구두 질의와 발언을 하고 각국 NGO의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있었던 건 필자로서는 그나마 행운이었다.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에도 우리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북한이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6·25전쟁 포로들과 휴전 이후 납북된 사람들, 그리고 베트남전 당시 포로가 돼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국군들을 잊지 않고 있다. 인권유린은 야만의 다른 얼굴이다.”

이두아 변호사·‘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북한인권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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