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美軍 비축탄약, 한미 갈등 큰 불씨 안 돼야

  • 입력 2005년 4월 10일 21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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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의 전쟁예비물자(WRSA) 유지 계획 폐기 문제가 한미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WRSA는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해 미국이 한국에 비축해 놓은 물자와 장비로 99%가 탄약이다. 미국이 이 탄약을 뺄 경우 한국군의 전시 탄약은 10일분에 불과해 전쟁수행 능력에 차질이 생긴다고 한다. 이처럼 중요한 사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한미 양국은 동맹국답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미국으로부터 WRSA 폐기 방침을 통보받고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최근 주한미군이 먼저 공개하자 시인했다. 국방부는 “문제의 탄약이 대부분 구형인 데다가 미국이 이를 우리에게 팔려고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먼저 공개하면 협상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요지의 설명을 했지만 군색하게 들린다. 협상력 때문이라면 오히려 전후 사정과 예상되는 미국의 대응까지 국민에게 미리 알리는 게 유효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 찰스 캠벨 미8군 사령관이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삭감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한국인 군무원 1000명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지 열흘 만에 다시 이런 식의 일방적 발표가 튀어나왔다. WRSA 관련 법안이 미 의회에 계류 중이어서 우리 측과 당장 협상할 형편도 아닐 텐데 한국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터뜨린 것이다. 자꾸 꼬이는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보여 주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WRSA 탄약 문제는 어차피 한반도 안보 수요에 대한 양국의 공통된 평가 위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다. 50만 t이 넘는 5조 원대의 탄약을 놓고 서로가 “이제는 필요 없으니 모두 가져가라” “무슨 소리냐, 대북 억지력에 기여했으니 전량 떠맡아라”는 식의 공방만 한다면 한미관계가 어디로 가겠는가.

양국 모두 동맹의 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한국 정부가 특히 그렇다. 지난 2년간의 ‘탈미(脫美) 부추기기’가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먼저 되돌아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미동맹을 추스르지 못하면서 ‘자주’와 ‘동북아 균형자’를 말하는 것은 지금으로선 공허하고 무책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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