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창록]북한 인권문제 바라만 볼 건가

  • 입력 2005년 4월 10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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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서울에서 한 비정부기구(NGO)가 주최한 북한인권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인권관련 시민단체 대표들의 열정과 노력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유럽과 미주 각지에서 몰려온 그들은 자신과 직접 관련도 없는 북한인권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개선을 촉구하는 데 목소리를 높였으며 마지막 날에는 결의안을 채택한 뒤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회의장 한구석에서는 이달 내로 예정된 유엔인권위의 북한인권결의안 처리에 대한 전략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필자 같은 일반 참가자들은 지난 2년간 유엔 인권위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되었던 배경에 이들의 노력과 힘이 뒷받침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놀라워했다. 세계 시민사회가 국제 규범의 형성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21세기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직접 목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

인권 관련 시민단체 쪽도 우리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빠른 민주화와 인권신장을 이룩한 대한민국이 같은 민족이 당하고 있는 인권유린에 대해서만은 눈감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놀라움이 아닐 수 없었다.

북한이 심각한 정도로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비밀이 아니다. 각 인권단체가 그 실상을 파헤쳐 왔고, 얼마 전에는 공개처형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와 국민 모두가 합심해서 침묵하고 있는 듯하다.

정부는 소위 ‘조용한 외교’로 북한인권 문제를 눈감아 왔다. 지난 2년간 유엔 인권위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킬 때 침묵하고 기권했다. 북한 핵문제 협의 및 민족 화해와 협력을 지향하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민족 공조의 중요성을 고려해 큰 그림을 해치지 말자는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더라도 언론과 국민의 침묵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개발독재시절 경제성장을 위해 인권유린이 묵인됐던 것처럼 이제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북한의 인권유린을 용인해야 한다는 것인가.

여기에는 과거 독재정권의 인권유린을 눈감았던 미국에 대한 깊은 불신의 뿌리가 있으며, 또한 북한 인권에 대한 논의가 미국의 적대적 대북정책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인권문제는 이미 인류 보편적 가치의 문제이고, 인권 규범을 주도하는 것은 강대국이 아니라 세계 시민사회다. 그들이 인권을 주도하고 국제회의를 이끌며 유엔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더 이상 주권국가들과 그들의 정부가 대표가 되는 모임이나 정부 간 국제기구에 의해서만 주도되지 않는다. 많은 이슈 영역에서 NGO들이 그 주체로 부각되고 있고 그들이 주권국가들과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국제질서를 새롭게 편성해 가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실시되는 유엔 인권위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서도 기권할 뜻을 비치고 있다. 반면 같은 장소에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일본에 대해 과거의 심각한 인권유린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큰 목소리를 내면서, 북한에는 현재의 심각한 인권유린에 대해서 침묵한다면 그 이중적 인권 의식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유엔 결의안 꼭 기권해야 하나▼

과거 인권침해 문제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우리가 그런 역사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루어낸 것은 대단한 힘이다. 남북관계와 더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은 핵 문제의 해결과 경제성장으로만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을 깨고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 줄 때 비로소 세계 시민사회로부터 환영받고 우리 정부가 희망하는 것처럼 동북아 지역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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