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깔아놓은 마당, 놀아보면 어떠리…마당놀이 '이춘풍전'

  • 입력 2003년 11월 10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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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마당놀이의 계절이 돌아왔다. 20여 년 간 마당놀이의 전통을 자랑하는 극단 미추는 ‘이춘풍전’을 가다듬고 있고, 미추와 공동제작해오다 결별한 뒤 지난해부터 독자적으로 마당놀이를 선보여온 MBC는 ‘어을우동’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심청전’을 소재로 흥행대결을 벌였던 이들은 올해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남녀 바람둥이를 소재로 다시 맞붙는다. 이춘풍 역의 윤문식(60)과 어을우동 역의 이재은(23)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바람둥이와 마당놀이에 대해 들어봤다.

○밉지 않은 바람둥이

“요즘 남자들은 바람을 피워도 알거지가 될 정도로는 하지 않지요. 그런걸 보면 이춘풍에게는 오늘날에는 없는 순수함이 있어요.”(윤문식)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 '이춘풍전'
기생 추월에게 빠져 가산을 탕진한 이춘풍이 아내 김씨의 도움으로 재기한다는 내용. 김지일 극본, 연출 손진책. 14~12월 14일 국립극장 내 마당놀이 전용 특설무대. 2만5000원~3만5000원. 02-747-5161

“음녀니 탕녀니 하는데, 실은 당시 사회가 어을우동을 그렇게 만든 거예요. 남자에게 선택당하는 시대에 남자를 선택했을 뿐이죠.”(이재은)

두 주인공은 모두 자기 역할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물론 이춘풍은 기생 치마폭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고 어을우동은 남자를 밥 먹듯이 바꾼 ‘문제적 인간’이지만, 적어도 현대사회에서 보면 나름대로 할 말은 있는 인물들이란 것. 윤문식은 “매사에 계산적인 현대인보다는 차라리 어수룩해도 순수한 이춘풍이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고, 이재은은 “어을우동을 당시의 ‘신여성’으로 평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베테랑 VS 초보

“80년부터 마당놀이를 시작했으니 24년째지요. 그래도 관객과의 호흡이 필요한 마당놀이가 보통 연극보다 열 배는 더 힘들어요.”(윤)

“사방이 객석이잖아요. 처음 연습할 땐 앞뒤를 가늠할 수가 없더라고요. 첫 회를 해 봐야 마당놀이의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이)

‘마당놀이’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가 윤문식이다. 사실 갖은 재담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데 그만한 기량을 가진 이도 없다. 그는 “마당놀이가 꾸준히 인기를 끌어온 데는 김종엽, 김성녀, 그리고 윤문식의 ‘3인방’이 제대로 만난 것도 이유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MBC마당놀이 '어을우동'
웃음으로 풀어가는 조선 시대 성 스캔들. '다모'의 정형수 작가가 극본을 썼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재은, 이재포 등 출연. 장수철 연출. 23일~12월 15일 장충체육관. 2만~3만원. 02-368-1515

이재은은 마당놀이가 처음이다. 영화 ‘노랑머리’의 도발적인 10대, 드라마 ‘인어아가씨’의 철없는 막내딸 이미지가 겹치는 그에게서 마당놀이와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소리를 시작하고 서울국악예고에서 민요를 전공하는 등 실제로는 전통예술과 무척 가까운 배우다. 연습장에서 만난 이재은의 한복 입은 자태(姿態)도 매우 고왔다. 그는 “단지 무대가 마당일 뿐, 기존 마당놀이와는 다른 신선함을 보여주자는 것이 ‘어을우동 팀’의 각오”라고 말했다.

○마당놀이는 현실의 반영

“이춘풍이 탕진한 ‘호조 돈 5만냥’이 요새로 말하면 공적 자금이에요. 마당놀이라는 게 원래 서민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하는 겁니다.”(윤)

“요즘의 ‘성(性) 남용’ 세태를 어을우동의 일생을 빗대 풍자하는 거지요.”(이)

이들은 한결같이 ‘마당놀이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강조했다. 윤문식은 “힘들고 어려운 때 국민들에게 힘을 주려면 ‘이춘풍전’만큼 해학적인 작품이 없다”며 “‘이춘풍전’은 92년 한 차례 마당놀이로 등장한 적이 있는데 역대 마당놀이 중 관객 반응이 가장 좋았다”고 회고했다.

이재은은 “어을우동의 행실이 옳다, 그르다 평가하자는 것이 아니라 남성위주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사회를 풍자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기 다른 측면에서 현실 풍자를 담아낸 두 작품 중 ‘이춘풍전’은 해피 엔드, ‘어을우동’은 주인공이 죽음을 맞는 비극으로 끝난다. 뚜껑을 열었을 때 과연 어느 작품에 관객들이 더 몰릴 것인지 관심거리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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