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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황호택/아름다운 歸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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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황호택/아름다운 歸天

입력 2003-07-11 18:03수정 2009-10-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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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부자로 죽는 것이 가장 부끄러운 일”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스코틀랜드 베틀 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13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면직공장 직공, 전신기사를 전전했다.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 사장의 눈에 띄어 비서로 일하다가 고속 승진을 했고 금융계통 회사에 투자해 번 돈으로 강철분야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국 철강업계를 지배하던 그는 1902년 회사를 팔고 은퇴한 뒤 자선사업에 여생을 바쳤다. 죽을 때까지 전 재산의 95%를 내놓아 미국 각 주에 도서관 2500여개를 지어 주었고 카네기 자연사박물관, 카네기 홀을 지어 헌정했다.

▷작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270억원을 내놓고 꽃동네에 100억원을 기부했던 강태원옹이 10일 84세를 일기로 귀천(歸天)했다. 하늘로 돌아가는 데는 귀천(貴賤)이 없다. 강옹은 1946년 평양에서 월남해 부산에서 부두노동을 해 번 돈으로 포목상과 운수사업을 꾸려 큰돈을 모았다. 강옹이 사는 방식은 카네기를 닮았다. 강옹은 1남4녀에게 어려서부터 “의지할 생각 말고 자기 밥벌이는 자기가 해라”고 교육하며 주위 사람들에게는 “대학 공부 시켜 주고 결혼할 때 아파트 한 채씩 사 주면 됐지 더 이상 주면 자식의 미래를 망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가난한 집안의 형제들은 고단한 삶을 꾸려 가느라 서로 여유가 없지만 부잣집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들은 유산 분배를 놓고 자칫 반목하기 쉽다. 법원에 제소되는 재산분쟁의 상당수가 피를 나눈 친족간에 벌어진다. 부모 재산으로 놀고먹고 방탕하게 살다가 삶을 그르치는 인생도 적지 않다. 강옹은 재산 대신에 ‘자기 밥벌이를 자기가 하는’ 독립정신을 자녀들에게 물려준 것이다. 어쨌거나 가문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전체 공동체에 부를 환원하는 것은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강옹은 사회에 수백억원을 쾌척하면서도 자신을 위한 일에는 자린고비 소리를 들을 만큼 절약했다. 빈소를 지키는 셋째딸은 “아버지가 마지막 병상에서 체중이 줄자 20년 된 양복바지를 세탁소에서 줄여다가 입었다”고 증언했다.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은 삶을 소풍에 비유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인생은 한나절 소풍처럼 해가 기울 무렵 빈 도시락만 들고 하산하는 것인가. 강옹은 하늘로 돌아갔지만 5%만 자손에게 남겨 주고 95%를 사회에 돌려주고 간 귀천은 아름다운 정신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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