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등장하는 위인이 20대 선조라고 가문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조상과 20대 후손의 DNA 구조는 남이나 마찬가지다. 세대마다 다른 가문에서 신부를 데려오다 보면 매번 이종 유전자가 50%씩 섞여 20대 후손이 조상과 공유하는 유전자는 2의 20제곱분의 1로 0%에 가깝다. 고대국가에서는 신성한 왕족의 혈통이 이렇게 평범한 핏줄과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근친혼(近親婚)을 장려했다. 그러나 서로 유전자 구성이 비슷한 근친간에 결혼을 할 경우 부모에게선 감추어졌던 치명적인 유전병이 그 자손에게 나타날 가능성이 잡종에 비해 매우 커진다. 유전학적 결함이 인정됨에 따라 근친혼 풍습이 아랍권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사라졌다.
▷식물도 한 개체 안에 있는 암술과 꽃가루가 만나서 부모가 되는 것을 피한다. 소나무는 수꽃이 암꽃보다 아래에 있어 한 나무에 있는 꽃가루가 바로 아래 암꽃에 닿는 것을 방지하고 옥수수는 시간차를 두고 피어나 근친교배를 막는다. 근친혼의 금지범위는 문명권에 따라 다르지만 얼마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넓게 근친혼을 금지했던 나라가 한국이다. 민법상의 동성동본(同姓同本) 금혼 조항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 8촌 이내 금혼으로 바뀐 것이 불과 6년 전이다. 그러나 신라 고려시대에는 근친혼이 성행해 고려 4대 임금 광종은 이복 누이동생을 왕후로 삼았다.
▷이라크 정보기관장을 지낸 바르잔 티크리티는 형 사담 후세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에게 딸을 시집보내 ‘형제 사돈’이 됐다. 동성동본의 결혼까지도 금하던 우리네 기준으로 아랍세계의 결혼 풍습에 대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미군에 체포된 티크리티는 지금 “나는 후세인에게 저항했다”고 사돈 형을 부인하기에 급급하다고 한다. 근친혼은 유전적 결함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위험성을 지닌 결혼제도 같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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