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換亂특감/정책실패]대책 사실상 전혀 없었다

  • 입력 1998년 4월 10일 19시 57분


한국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 외환위기는 왜 일어났고 누구의 책임인가. 감사원이 1월30일∼3월7일 벌인 ‘외환 금융관리실태 특별감사’를 토대로 10일 내놓은 ‘97년 외환위기의 원인분석과 평가’ 내용을 △구조적 측면 △정책 실패 △외환위기 보고과정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한국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에 이르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은 정지돼 있었다. 주무 부처인 재정경제원은 지난해초부터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외채를 장기채 위주로 전환해야 했으나 한국은행과 ‘밥그릇 싸움’에 몰두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을 고려하지 않고 ‘우물안 개구리’식 정책 대응을 되풀이하고 그나마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외환위기를 불렀다.

▼외환위기 가능성 대응미비〓지난해초부터 금융시장은 위기 경보음을 내고 있었지만 정부는 위기 가능성 조사나 이에따른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한보와 기아사태 이후 달러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동남아사태 등 국제금융불안이 지속되면서 외환위기 가능성은 사전에 감지할 수 있었다.

대외신인도가 하락한 주원인은 금융부실, 정부의 기아인수, 정부의 금융기관 지불보증 선언 등에 기인했다. 이들 문제에 대한 개혁의지를 명확히 하지 않아 외환위기를 더욱 심화했다.

▼부실한 금융감독〓90년대이후 자본자유화가 급속히 진전됐으나 금융당국의 감독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감독당국은 금융기관 해외점포의 현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해외점포가 무분별하게 달러를 빌려 엉터리 대출을 일삼았지만 금융당국은 ‘까막눈’이었다.

외환위기 주범으로 꼽히는 종금사는 감독 사각지대에 방치해 놓았다. 종금사 업무가 대출위주로 운영되는데도 ‘대출운용에 관한 기준’조차 만들지 않았다. 올들어 인가취소된 쌍용 항도 경일 신세계종금사는 지난해 재경원 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을 정도다.

▼외채 관리 소홀〓역외금융이나 해외점포 차입에 대한 관리가 소홀했고 외채 정보를 지나치게 은폐했다.

단기차입 규제를 하지 않거나 규제가 느슨한 반면에 1년이상의 중장기자금조달에 대해선 한도관리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엄격한 규제를 해 외채구조를 단기위주로 몰고갔다. 외채나 외환보유고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았다.

▼부실기업 및 부실금융기관 처리〓부실기업 처리과정에서 명확한 원칙이 없고 부실기업의 처리가 지연됐다. 이로써 금융시장 불안감이 고조되고 국가신인도가 하락했다.

특히 기아사태는 외국인 투자자들과 신용평가기관들이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을 시험하는 계기였으나 재경원의 결정이 지연되면서 한국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환율방어에 외환낭비〓IMF가 권고하는 경상수지적자는 국내총생산(GDP)대비 3%이며 5%를 넘어서면 위험한 수준이다. 96년 당시 우리나라는 5%에 육박해 원화가치를 절하할 필요가 있었다. 97년 1분기중 달러화 대비 엔화는 6.4%, 마르크화는 8.1% 절하됐으나 원화는 5.9% 절하에 그쳐 실질적으로 원화절상 효과가 나타났다.

97년 하반기이후 무리한 환율안정 정책으로 충분하지 못한 외환보유고를 소진해 외환위기를 심화시켰다.

원화환율을 절하하지 않은 이유는 환율상승으로 1인당국민소득이 1만달러이하로 하락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물가안정을 책임진 재경원은 환율상승에 따른 물가불안을 염려해 환율방어에 나섰다.

한국은행은 96년말 3개월치 수입액에 미달되는 외환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부족한 외환을 환율방어에 낭비했다.

▼늑장부린 IMF 지원 요청〓지난해 10월말 외환수급 상황이 급속히 나빠져 위기가 감지됐지만 11월21일까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아 외환시장은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됐다. 11월11일부터 21일까지 열흘동안 가용외환보유고는 1백95억6천만달러에서 1백27억8천만달러로 무려 67억6천만달러의 외화가 낭비됐다.

정부가 IMF의 구제금융 지원을 회피하려다 지원요청이 늦어져 최악의 상황에서 구제금융을 신청, 협상력이 떨어져 IMF 고통이 더욱 가중됐다.

〈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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