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ASEM 정상외교의 성과

  • 입력 1998년 4월 8일 19시 19분


국제통화기금(IMF)시대의 정상외교는 당장은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금융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우리의 사회 경제체제의 개혁을 통해 경제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는 기반 구축에 기여하는 외교가 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이번 런던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은 ASEM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밖에 가진 모든 활동이 투자 유치에 집중된 IMF시대형 정상외교 활동이었다고 특징지을 수 있다.

다자(多者)간 정상회의는 대개 구체적 성과보다는 예정된 시나리오에 따라 의제들을 피상적으로 훑어 나가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고 또한 다분히 선언적(Rhetoric)인 성명 발표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이번 런던 ASEM에서만은 달랐다.

바로 김대통령이 시나리오에 없는 ‘고위 투자촉진단’파견을 제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의 정리된 논리와 전략적 사고가 발휘되어 참석했던 정상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마지막 회의는 예정된 의제를 제쳐놓고 시종 그 문제만을 협의하는 결과가 되었다.

의장석에 앉아 있던 영국 총리는 물론 독일 일본 이탈리아 총리, 프랑스 대통령이 투자단을 한국에 파견할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고 일부 정상은 자기나라도 사절단 파견의사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실무자들은 한밤중에 비상이 걸렸다. 이미 고위 실무자들간의 검토를 거쳐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성명서 초안에 김대통령의 제안을 추가해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이 이번 ASEM을 계기로 런던에서 펼친 정상활동 중 두드러진 행사는 세계 굴지의 금융인들과의 조찬 모임, 그리고 영국산업연합회(CBI)와 파트너십 코리아가 공동주최한 오찬 연설이었다.

영국 중앙은행 총재와 증권거래소 회장을 비롯한 중요 금융기관 수뇌, 6대 은행과 4대 투자금융 그룹의 총수들이 런던시장의 역사적인 관사에 모여 영국에서는 흔치 않은 조찬 모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위기 극복을 위한 개혁의지를 피력하였고 역시 금융계 거두들다운 핵심을 찌르는 까다로운 질문에 대해 정연한 논리로 답함으로써 참석자들은 감명받은 듯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에디 조지 영국중앙은행 총재는 관례에 없는 최종 코멘트를 자원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병행 발전시키겠다는 김대통령의 의지에 영국 금융계가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또한 위기 앞에서 한발 물러섬이 없이 정면으로 대처하는 김대통령의 자세에 고무되었다고 말했다.

CBI 파트너십 코리아가 공동 주최한 오찬 모임에서도 김대통령은 우리나라 경제 위기의 원인을 솔직히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개혁 조치들과 특히 투자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을 설명했으며 많은 질문에 대해 진솔하고 성실하게 답변했다.

특히 지난 수십년간 아시아 국가들이 이룩한 경제성장은 아시아적인 가치관에 기초하고 있다는, 이른바 아시아형 개발 철학을 김대통령은 정면으로 반박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메커니즘은 양 수레바퀴로 이를 통해 진정한 경제 발전이 촉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지 언론들은 김대통령의 이같은 주장에 주목했으며 각국의 정치 지도자와 영국의 금융 및 기업 지도자들도 김대통령의 연설에 공감을 표했다.

아울러 그러한 지도자를 갖고 있는 한국에는 이제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최동진<주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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