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도 과외열풍…고입고사폐지 『내신싸움』짝궁=라이벌

  • 입력 1997년 7월 1일 08시 08분


최근들어 서울 강남 S중학교 3학년 방모군(15)의 발걸음이 무겁다. 중간고사에서 뻔히 알고 있는 문제를 틀렸기 때문. 한 문제면 몇등이 왔다갔다하는데…. 게다가 시험도중 짝이 책상서랍에 몰래 책을 꺼내놓고 커닝을 하는 장면까지 목격해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나도 좀 보고 할 걸 그랬나. 하지만 걸렸다가는 0점처리돼 인문계고등학교는 꿈도 못꿀거야」. 집에 가면 줄줄이 짜여 있는 과외 시간표. 「그냥 오락실에나 가버릴까. 아냐. 어머니가 걱정하실거야」. 「고입선발고사 폐지, 내신성적 부활」. 종전에는 고입선발고사에만 합격하면 고교에 진학할 수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생활기록부의 내신성적만으로 뽑게돼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이 많이 몰려있는 서울강남과 목동지역의 학생들이 불리해졌다. 우수학생들이 몰려있는 이 학교에서 방군은 반에서 중간정도의 성적을 유지해 예전대로라면 강남의 인문고에 충분히 진학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다. 새 입시제도에 따라 강남지역의 학생들중 실업계고교로 가야하는 학생들이 더많아진 것이다. 방군과 방군의 어머니에게는 청천벽력같은 발표였다. 방군의 가정은 부유한 편이 못된다.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와 집에서 살림을 하는 어머니. 그렇지만 방군의 어머니는 요즘 방군을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없는 돈을 빌리러 은행을 들락거리느라 바쁘다. 얼마전 중간고사 영어시험에서 1개 틀린 학생이 반에서 30등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방군의 어머니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내 자식만큼은 혼자힘으로 공부시키겠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으나 서둘러 유명 과외 선생님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일찌감치 과외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대학생선생님을 모시기로 했다. 과목당 30만∼40만원씩 7명으로부터 개인교습을 받기로 한 것. 국어 영어 수학에서부터 과학 한문 사회 미술까지…. 방군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아예 자녀들을 해외로 유학 보내기로 작심한 학부모도 상당수다. 반에서 40등 이하인 한 친구의 어머니는 이번 입시제도 발표 이후 강북지역으로 전학가는 문제를 놓고 학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우리 아이의 학급 석차가 40등안팎인데 강북 지역으로 가면 10등안에 들 수 있다』며 전학을 시켜달라고 요구한 것. 한 3학년 담임 교사는 『옆자리에 앉은 짝이 합격에 영향을 미치는 라이벌이 되는 상황을 만든 교육제도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박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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